[인터뷰] 한석규 "'프리즌' 악역 연기, 65점…100점짜리 캐릭터 없다"
2017-03-23 00:01
“걸음걸이나 표정, 말투 같은 것까지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제 특유의 말투 있잖아요. 이런 투로 익호를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신인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들은 어느 정도 한석규라는 배우를 떠올릴 수 있잖아요? 이게 저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영화 ‘프리즌’(감독 나현)은 교도소에 갇힌 범죄자들이 완벽한 알리바이를 꿈꾸며 범죄를 벌이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한석규는 죄수들을 진두지휘하는 권력자 익호 역을 맡았다. 교도관들조차 자신의 발밑에 두고 쥐락펴락하는 교도소의 절대 제왕이자 절대 악인 인물이다.
“분명 쉽지 않은 역할이 될 거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의 직업은 배우잖아요?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저와 관객들이 오랜 시간을 보내며 쌓아온 것들, 그 익숙한 지점들을 깨트려보자고 생각했죠. 연기자 입장에서도 또 보는 관객들 입장에서도 재밌는 작품이 될 거예요.”
“저는 신인 감독과의 작업을 좋아해요. 나현 감독과의 호흡 역시 즐거웠어요. 신인 감독이 아니었다면 제게 익호라는 캐릭터를 줬겠어요? 하하하. 저도 매너리즘에 빠지고, 안주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익호라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통해 새로움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연기 신(神이)라 불리는 한석규에게도 매너리즘이 찾아왔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때마다 변신과 변화를 거듭하며 자신의 틀을 깨고자 했다. 영화 ‘프리즌’ 역시 마찬가지다. 한석규는 “영화가 가진 소재와 주제, 익호라는 인물에 대한 고민”으로 활력을 얻었다.
영화 ‘프리즌’의 부제는 ‘영원한 제국’이었다. 한석규는 영화의 부제가 마음에 꼭 들었다고 밝히며 “영화의 주제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제목이었다”고 칭찬했다.
“유건(김래원 분)과 익호의 관계 그리고 ‘프리즌’ 세계관을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익호가 사라진다고 해도, 유건은 또 익호의 뒤를 잇겠죠. 시간이 흐른 뒤, 관객들이 이 영화를 생각했을 때 ‘아,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구나’하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프리즌’ 최대 난제였던 악역 연기를 두고, 한석규는 아이러니하게도 “연기를 하지 않으려 애썼다”고 말했다. 이어 “바보 같은 말”이라 자조한 그는 “선한 역이든 악역이든 간에 어렵지 않게 쉽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느 날 문득 연기하면서, 너무 어렵게 온갖 수식어를 갖다 붙이고 화려하게 꾸며댄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보는 이로 하여금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저 사람이 화가 났구나’, ‘저 사람이 나쁜 역이구나!’ 알 수 있으면 그만인데도. 너무 꾸미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이토록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기해왔는데도 한석규는 ‘프리즌’ 속 익호에게 65점을 주겠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짠 점수라고 거들자, 그는 “전 좀 짜다”며 홍연대소했다.
“제 연기인생에 100점짜리는 없어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8월의 크리스마스’인데, 극 중 정원 역도 한 80점 정도예요. 이제는 저 스스로가 관객이 돼 저를 볼 수 있게 됐어요. 내 연기를 보는 건 꽤 재밌는 일이거든요. 물론 자학적인 요소가 섞여들었지만요. 몸서리치다 보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정상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석규는 “카메라에 가까이 갈수록, 위치가 중요해진다”며 후배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저 역시도 카메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가 있었죠. 그러다가 점점 더 카메라와 가까워졌고 멀리 있는 친구들을 업고 카메라 앞으로 다가가게 되었어요. 제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안달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면서 계속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게 중요한 거예요. 기어가든, 뛰어가든 꾸준히 다치지 않고 계속해서 가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