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헌정 사상 최초 여성 대통령에서 최초 ‘탄핵 대통령’으로…18년 정치 인생 마침표

2017-03-10 15:59

[사진=청와대]




아주경제 주진 기자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최초의 부녀 대통령, 민주화 이후 최초로 과반 지지율(51.6%)을 얻은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은 최초로 탄핵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난 대통령이라는 오명으로 남게 됐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34년 만에 입성했던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사저로 쓸쓸한 발걸음을 옮긴다.

박 전 대통령은 1952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 1979년까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행했다. 이 시기에 구국봉사단(후에 새마음봉사단으로 개칭)을 조직한 최태민과 함께 국민정신 개조운동인 새마음운동을 전개하면서 최씨 일가와 인연을 맺었다.

 

[사진=대통령기록관]

1979년 아버지마저 부하에 의해 암살되자 두 동생(근령·지만)을 데리고 청와대를 나와 서울 신당동 사저로 옮겼다. 이후 1982년 8월 신기수 전 경남기업 회장이 마련해준 성북동 집으로 옮겼다가 1990년 현재의 삼성동 집에 입주했다. 삼성동 사저의 계약 주체는 최태민씨의 부인이자 최순실씨의 어머니인 임선이씨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어머니 육영수가 1969년에 설립한 육영재단 이사장(1982~1990), 정수장학회 이사장(1994~2005) 등을 지내며 18년간 칩거 생활을 했다.

그러던 1997년 한나라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했고, 이듬해 4월에 치러진 대구광역시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19대 국회까지 내리 5선 의원을 지냈다.

1998년 10월부터 한나라당 부총재로 일하다가 2002년 2월 탈당한 뒤 5월에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여 당대표로 취임했으나, 제16대 대통령선거를 1개월 앞둔 2002년 11월에 한나라당과 합당하는 형식으로 복당했다.

2004년 한나라당 차떼기(정치자금 수수) 파문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빠지면서 구원투수로서 당 대표로 선출됐으며, 그해 총선에서 121석을 얻으며 선전했다. 그 뒤 2006년 6월 대표에서 물러날 때까지 지방선거와 각종 재·보궐선거에서 모두 완승을 거둬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의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다.

2011년 10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된 뒤 2012년 2월 당 명칭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하는 등 쇄신을 주도했다. 2012년 7월 제18대 대통령선거 당내 경선에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고,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슬로건으로,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다.

 

[사진=청와대]



집권 4년 동안 국무총리·장관 인선 실패,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악화일로로 치달은 당청관계, 대국회관계,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결정, 위안부 문제 합의 논란 등으로 대내외 악재에 시달렸다.

급기야 집권 4년차인 지난해 10월 40년 지기 최순실의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지면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격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2016년 12월 3일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국회에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고, 12월 9일 국회에서 가결돼 대통령 직무가 정지됨으로써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로 탄핵소추가 가결된 대통령이 됐다. 이후 92일 만인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탄핵소추안을 인용,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