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박근혜’인데 '재벌총수’에 꽂힌 특검 수사

2017-01-15 16:22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을 앞두고 정의당 당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아주경제 채명석·박선미 기자 =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무차별 재계 수사가 특검의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핵심인데 ‘재계농단’으로 그 타깃이 비꼈다는 이유에서다.

특검은 오는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신병 처리 방향을 확정키로 했다. 이를 통해 삼성-청와대 뒷거래의 정점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 수사를 본격화한다는 복안이다.

삼성은 최씨 모녀에 대한 지원을 박 대통령의 ‘압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며 ‘공갈·강요 피해자’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부회장도 12∼13일 22시간에 걸친 밤샘 조사에서 이러한 취지의 주장을 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삼성은 특검팀 출범 때부터 집중 타깃이었다. 박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하기 위한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인 박 대통령과 최순실을 뇌물죄로 엮으려고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토로했다.

애초부터 특검이 삼성에 대한 반감을 업고 시작됐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특검의 최우선 대상인 최순실 씨를 비롯해 그의 딸 정유라 및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핵심인물은 소환조사도 못하면서 대기업 총수만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만 도마에 오른 게 아니다. SK그룹과 롯데그룹에도 특검 수사 불똥이 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들 그룹은 숨을 죽인 채 특검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 조사 결과를 토대로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한 뒤 SK와 롯데 등 다른 대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수사 확대를 염두에 두고 이 부회장 뿐만 아니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재벌 총수 여러 명을 출국금지했다.

SK와 롯데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당시 각각 111억원, 45억원을 출연했다. 당시 SK는 최태원 회장 사면, 롯데는 면세점 인허가라는 중요 현안이 있었다.

이같은 의혹 속에서 기업에 대한 여론은 악화됐다. 재벌 해체와 같은 ‘대기업 때리기’ 풍토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이 부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자, 정의당 당원들이 구속 수사를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였다.

같은날 일부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이재용을 구속하라”고 소리치며 포토라인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자칫 기업의 경제 활력을 떨어뜨려 투자·고용 감소로 인한 경제 파국으로 치닫을 수 있다는 게 재계 안팎의 우려다.

청년 실업률이 사상최대를 기록했고, 성장률도 2%대에 그친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삼성은 사장단 인사와 조직개편, 사장단 워크샵 등 굵직한 일정들이 취소된 상태다. 사장단 인사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투자와 채용 계획은 올스톱됐다.

연말연초에 예정됐던 해외 일정들도 줄줄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이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 신동빈 회장 등은 특검 수사 여파로 17일부터 스위스에서 개최되는 다보스포럼에 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안들을 놓칠 수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금세 외국 경쟁사들에 뒤처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는 지적이다.

대기업 고위임원은 “경제가 녹록치 않은 상황임에도 대기업들은 수사 대응 및 분위기 파악에 최우선 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