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재단, '진보 성향' 문화인 솎아내기 위한 도구였나

2016-12-28 12:22
특검, '문화계 좌파 구도 정돈 위해 재단 설립' 진술 확보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이 미르재단을 통해 문화계 내 소위 '진보·좌파 세력'을 '정돈'하려 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미르재단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 [사진=연합뉴스]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비선 실세' 최순실(60·구속기소)씨가 설립과 운영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재단이 문화계 내 '진보 성향' 인사들을 솎아내기 위한 도구로 활용됐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2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박영수 특검팀은 전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계 내 소위 '진보·좌파 세력'을 문제로 생각해 정부가 이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재단법인을 세워 문화계를 '정돈'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내용의 진술 자료를 확보했다. 

또 박 대통령은 미르재단이 기업들을 상대로 사실상 '강제 모금'에 나설 때 '행동대장' 역할을 했던 안종범(57·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문화계)이슈를 선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황은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확보해 특검에 넘긴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에도 담겨 있으며, 최씨에 대한 공소장에도 미르재단의 설립·운영은 최씨가 주도했지만 재단 설립 구상은 박 대통령이 직접 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미르재단이 자신들의 누리집에 소개한 사업 영역은 △문화 연구 콘텐츠 개발 △문화 저변 구축 및 확산 △문화 외교 △통일 문화 기반 마련 등 크게 네 가지다. 박 대통령의 '문화계 정돈' 의중에 비춰볼 때 재단이 그동안 16개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486억원을 '총알'로 삼아 진보적 문화계 인사들을 정조준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문화계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진보 성향이 강한 문화계 판도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청와대와 문체부가 작성·관리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나 박 대통령이 지난 2013년 7월 조원동(60)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통해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을 2선으로 물러나도록 압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유진룡(60) 전 문체부 장관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변호인' 등의 영화를 보고 '그런 걸 만드는 회사(CJ)를 왜 제재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유 전 장관에 따르면 김 전 실장관은 변호인의 마지막 타이틀롤에 문체부가 계속 붙어 올라가는 걸 보고 '쯧쯧' 혀를 차고 매우 못마땅해 했다. 

또한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업무일지에는 김 전 실장으로 추정되는 '장(長)' 표기와 함께 "사이비 예술가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문화예술가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메모가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 한 달 전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는 유 전 장관은 "김 전 실장은 '순수 문화예술 쪽에서 반정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단체를 왜 지원하느냐? 제재하라'는 요구를 직접 또는 교육문화수석·문화체육비서관 등을 통해 전달했다"며 "(블랙리스트는)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했고, 그 배후에는 김 전 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는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 야권 후보 지지 서명 등 현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 9473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