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窓]이병철과 정주영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

2016-12-21 07:01

[김종수 부국장 겸 산업부장]

대규모 집회, 연좌제, 비선실세, 시국선언…

이런 단어나 표현들을 요즘 언론을 통해서 부쩍 자주 접한다. 독재와 억압, 혼란과 반목의 시대를 겪지 않았던 20세 안팎의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에겐 다소 생소할 듯 싶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금은 ‘혼돈’의 시대이다.

당연히 경제 역시 좋을리 없다. 한국경제는 역대 최저 성장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이다. 올해도 3% 성장이 어려울 것 같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 전망은 더 불투명하다. 1% 성장에 머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기업들은 잔뜩 움츠러드는 모습이다. 탄핵 정국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등 대내외 변수마저 불거지면서 상황은 점점 더 꼬인다. 삼성, 현대차, SK 등 국내 주요 그룹들에선 내년 사업계획 수립 등 기업의 본업(本業)조차 후순위로 밀려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특별검사와 헌법재판소, 국회 등만 초조하게 바라보며 시간을 허비해야 할 판이다. ‘불확실성’은 지금 경제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모든 상황을 뒤덮고 있다.

경제 위기에 리더십 위기라는 휘발유까지 끼얹어진 가운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매 주말 촛불이 타오른다. 촛불이 희망이기를 모두들 바라지만 어둠의 전조일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팽배하다. 불안과 좌절을 부르는 어둠의 그림자가 촛불 너머에서 노려보고 있다.

어느 기업이나 위기와 성장의 시대를 점철한다. 위기라고 여겨질 때 좌절하는 기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성장할 때 자만해도 성공의 수레바퀴는 멈춘다. 모든 게 불확실한 ‘혼돈의 시대’일수록 자신감을 갖고 삶의 주도권을 확고히 해야 한다. 분명한 목적을 갖고 꿈을 향해 단호하게 전진해야 한다.

정신분석의사이자 세계적 경영컨설턴트인 팀 어윈은 저서 ‘무한도전 : 나의 벽을 넘는 힘(2008)’에서 "도전하라, 그 순간 성공의 수레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한다"고 했고, 사회복지사업가 겸 작가인 헬렌 켈러는 “삶은 위대한 모험이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다.

최근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 오늘날 한국경제의 터전을 마련한 주요 그룹 창업주들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만큼 경제가 어렵다는 징표다. 불굴의 '기업가 정신'에 목마르다는 의미다. 시대가 다르지만 경제 난국을 타개할 방법과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이들의 삶 속에 내재된 경영정신을 되살려 현재의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시대의 요청이다.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1910~1987)은 생전에 "기업가에게 사업상의 위기란 도약대와도 같다"며 "위기를 극복할 때마다 그 기업가는 한결 폭넓게 원숙해진다"고 역설했다. 또 "난관은 정복당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삼성이 오늘날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그의 사업성에 대한 예리한 판단력, 앞을 내다보는 직관력과 함께 강한 도전정신이 바탕이 됐다.

또 이 회장은 "삼성이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은 충분한 투자여력이 있어서만은 아니다"면서 "오로지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을 성공시켜야만 첨단산업을 꽃피울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삼성의 모든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이 사업의 추진을 결심했던 것이다”고 말해 기업가정신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줬다.

불굴의 기업인인 아산(峨山) 정주영 회장(1915~2001)은 “나는 상식에 얽매인 고정관념의 테두리 속에 갇힌 사람에게는 아무런 창의력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믿는 건 굳센 의지와 잠재능력, 창의성, 우리 민족의 엄청난 에너지뿐”이라고 강조했다.

SK그룹 창업주인 담연(湛然) 최종건 회장(1926~1973)은 "어떠한 도전과 어려움 속에서도 '안 되는 것이 없고, 안 되면 되게 한다'는 강한 도전정신과 실행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위기에는 좌절과 기회라는 양면이 있다. 어느 면을 생각하고 행동할지는 기업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당면한 현실에 급급해할 것이 아니라 희망과 비전을 공유하고 재도약의 의지를 불태울 필요가 있다. 이보다 더한 어려움도 이제껏 헤쳐오지 않았던가. 올해로 작고한 지 15년이 된 정주영 회장이 후배 기업들인에게 묻고 있다. "이봐, 해봤어?"

김종수 부국장 겸 산업부장 js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