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베이징 현지에서 중국의 관료들과 각계 인사들을 만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소재로 대화를 해보면 이들은 지금 한껏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중국에 대해 적대적인 발언들을 쏟아냈었고, 이 사실을 중국인들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트럼프가 이끌 미국에 대해 걱정을 털어놓는 것으로 대화가 시작되지만, 결국 힐러리가 이끌 미국을 생각해보면 트럼프가 더 나을 것이라는 식의 해석이 덧붙여진다.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시절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자격으로 8년을 종횡무진했고, 이후 야당의 유력 대선주자이자 상원의원으로 8년간 부시정권을 보낸 후, 오바마 정권에서 4년간 국무장관을 역임하며 세계를 쥐락펴락했고, 오바마 2기정부 내내 1위 대선주자를 질주했으며 대선을 완주한 인물이 힐러리 클린턴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외교에 능하고, 커리어가 훌륭하며, 경험이 축적된 인사라고 할 수 있다. 제아무리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유능하다 하더라도 '미국대통령 클린턴'을 당해낼 수 있을까. 중난하이(中南海)가 클린턴의 낙선에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이야기가 베이징에 흘러나오는 이유다.

중국인들은 이에 더 나아가 트럼프의 미국은 중국의 굴기에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는 기대섞인 반응을 내놓기도 한다. 이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트럼프가 당선을 확정한지 10여일이 지난 중국에는 기대감섞인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의 각계 인사들이 최근 몇일동안 내놓은 트럼프시대에 대한 반응들을 정리해본다.

◆마윈 "성공한 기업가 DNA 믿는다"

알리바바 마윈(馬雲) 회장은 트럼프가 성공한 기업인이라는 점을 근거로 낙관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마윈 회장은 지난 19일 개최된 세계저장(浙江)상인 상하이(上海)포럼에서 "기업인은 목표지향적이고, 고효율을 추구하며, 일방적인 이익추구가 아닌 파트너와의 윈윈을 추구한다"며 "트럼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며, 선거전에서 거친 말을 쏟아냈을지라도 대통령에 취임해 실제 업무에 닥치면 냉정을 되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의 당선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는 필연적인 사건"이라며 "단지 미국 기득권층의 눈에 블랙스완으로 비칠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트럼프가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말하기 어렵겠지만 최악의 대통령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미래 30년간 미중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생길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양국은 전면적인 협력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마 회장은 지난 9일 CNN 머니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집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그는 똑똑한 사람이고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절대 등한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 회장은 "선거기간에 트럼프처럼 중국을 위협하는 후보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며 "이들이 대통령이 돼서 책임이 생기면 세상이 생각처럼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왕젠린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중국 최대 부호인 왕젠린(王健林) 완다(萬達)그룹 회장 역시 트럼프 체제하의 미국이 바뀔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미국 대선기간동안 중국에서 왕젠린 회장은 줄곧 트럼프에 비교됐었다. 두 사람은 부동산 재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 일각에서는 왕젠린이 훨씬 성공한 사업가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왕 회장은 지난 19일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外灘) 국제금융 정상회의에서 "트럼프가 중국의 존재에 대해 적의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나는 이에 대해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트럼프의 당선에 대해 진심어린 축하를 보낸다"고도 말했다.

미국 기업의 인수·합병(M&A)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 중 하나인 완다는 10억 달러를 들여 골든 글로브상과 아메리칸 뮤직상, 빌보드 뮤직상 등을 주관하는 TV제작사 '딕 클라크 프로덕션'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진이난 "역내 군사압박 완화될것"

중국의 저명 국제전략 전문가로 예비역 중국군 소장인 진이난(金一南) 전 중국국방대 전략연구소 소장은 18일 홍콩에서 열린 강연에서 단기적으로 미·중 관계가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트럼프 집권 아래서 미·중 관계가 클린턴 후보의 집권보다 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내치에 중점을 두며 국제 정세 개입을 덜 좋아할 것이므로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정치·군사적 압력을 덜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더 많은 경제적 압력을 가하겠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사회 통합을위해 경제 발전에 더 신경 쓸 것이기 때문에 경제분야에서도 새로운 협력 통로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세계화에 반대한다고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지만, 그의 기조가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본다"며 "이는 일종의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진리췬 "미국 AIIB가입 환영"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진리췬(金立群) 총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AIIB에 가입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지난 15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영문사이트에 따르면 진 총재는 인터뷰에서 "미국의 새 정부가 AIIB를 지지하거나 AIIB 가입의 뜻을 암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가 AIIB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트럼프 당선후 트럼프 진영의 많은 참모들이 오바마가 AIIB에 합류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내게 알려주는 이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진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트럼프 당선인의 국가안보 고문인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10일 한 언론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대(對) 중국 태도를 전면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직후에 나온 것이다. 울시 전 국장은 오바마 정부가 AIIB 설립에 반대한 것은 '전략적 착오'라고 비판하며 내년 1월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뒤 미국이 이 문제에서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왕타오 "트럼프, 중국경제에 호재"

UBS의 중국 수석애널리스트인 왕타오(汪涛)는 트럼프의 당선이 중국경제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우선 미국이 재정정책을 사용해 미국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한다면 중국의 전세계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가 다음달 달러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미국 달러화 강세는 위안화약세를 유도할 것이고, 이는 중국의 수출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기간동안 트럼프가 중국제품에 45%관세를 부과할 것이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왕타오는 그리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고 해도, 이로 인해 중국이 받을 제약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45%의 관세를 부과한다면 이는 WTO 규정을 반하는 것이기에 현실가능성이 낮다"면서 "만약 45% 관세를 강행한다면 중국은 미국산 농산품이나 항공기 등에 보복관세를 부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의 금융서비스와 IT제품에 대해 중국이 높은 무역장벽을 세울 가능성도 거론했다. 그는 "경제적인 강경조치는 결국 미국의 경제성장과 취업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며 "결국 양국의 협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븐로치 "투자협정 체결 가능성높아"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트럼프는 선거기간의 발언과 달리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중국에 유연한 태도로 접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경제제재를 가한다면 중국이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것은 모든 미국인들이 예상할 수 있는 바"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트럼프가 미중 양국 간 투자협정(BIT)을 체결해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협정은 지난 8년동안 오바마 정부가 해내지 못한 난제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전략가이며 협상의 달인인 만큼 협정체결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로치 회장의 의견이다.

그는 "투자협정이 체결된다면 미국기업에게 중국시장의 문호가 대거 열리게 된다"며 "비즈니스맨출신으로 곤경에 빠진 미국기업들에게 시장기회를 안겨주는 것보다 더 나은 정책이 무엇이겠는가"라고 제안했다.

◆선젠광 "중국 이익공간 크다"

미즈호증권의 선젠광(沈建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당선은 중국에 손해를 가져올 수 있겠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가 보호주의를 내걸었지만 미국은 동시에 여러국가와 무역전쟁을 벌일 수 없다"며 "중국과 무역분쟁이 벌어진다 해도 중국의 몸집이 거대해진 만큼 그 충격은 감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트럼프는 이미 중국의 일대일로정책을 지지한 바 있다"며 "미국이 한반도 사드배치를 철회할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선젠광은 "중국이 향후 더욱 개방적인 자세로 경제와 정치를 안정시켜나간다면 전세계를 이끄는 경제금융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중국이 전세계 경제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본격적인 G2시대를 열게 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