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문화 동맥경화'…지역 문화 살아야 '문화융성' 온다
2016-11-17 15:00
문화기반시설 부족, 예술인 홀대 등 지방은 여전히 '문화소외'
문화콘텐츠 매출 늘었지만 지역별 문화 육성은 지지부진
문화콘텐츠 매출 늘었지만 지역별 문화 육성은 지지부진
아주경제 박상훈·정등용 기자 ="정치·경제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문화까지 그러는 건 너무하지 않으냐."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어르신들까지 지방은 '문화 아사(餓死)' 직전이다."
대한민국은 '문화 동맥경화'를 앓고 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제5차 계획이 마무리된 1986년까지 우리나라는 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 중화학공업 육성, 해외 수출, 기술 혁신 등을 기치로 내걸고 쉼없이 내달렸지만, 성장의 '과실'을 맛본 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었다. 많은 씨앗이 뿌려진 곳에서 풍성한 꽃이 자라는 법. 수도권은 이를 바탕으로 '문화'까지 독식하기 시작했다.
◆ 영화관·공연장 태부족…"나눔티켓 있어도 쓰질 못 해"
지방의 문화 소외는 저소득층의 문화 향유를 위해 문화예술단체들로부터 객석을 기부받아 무료 또는 할인된 가격으로 공연·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인 '나눔티켓' 사용 현황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더 큰 문제는 저소득층을 위한다는 나눔티켓이 수도권에서만 집중적으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2013년부터 지난 9월까지 기부된 공연 티켓 52만여장 중 92.6%(48만5445장)가 서울·경기·인천에 편중됐고, 같은 기간 사용된 공연티켓도 전체 17만2906장 가운데 92.5%(15만9756장)가 이 지역들에 쏠려 있었다. 대구, 광주, 대전, 울산, 세종,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는 1% 미만의 사용률을 보였다.
곽 의원은 "나눔티켓 기부실적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나눔티켓 사업을 널리 알리는 홍보가 필요하며, 132만명에 이르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대상자는 자동으로 회원 등록이 되도록 보건복지부 등 관계기관과 연계해 나눔티켓의 이용률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문화예술위원회는 나눔티켓 신규 기부 대상처를 발굴하고, 현재 1인당 두 장으로 제한돼 있는 이용 매수 기준을 상향 조정할 계획을 밝혔다.
영화관·공연장 등 문화 시설의 지역간 편차도 심각한 수준이다.
국회 교문위 소속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부산 북구강서구갑)은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등록공연장·영화관·문화기반시설 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수도권의 경우 공연장(562곳, 56.2%), 영화관(189곳, 48.2%), 도서관(392곳, 42.1%), 미술관(86곳, 42.6%), 박물관(290곳, 35.8%) 등이 높은 비율을 보였고, 지방은 문예회관(173곳, 74.6%), 지방문화원(165곳, 72.1%), 문화의집(96곳, 82.8%) 등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예회관·지방문화원·문화의집은 사업시행 단계부터 지역별로 배치가 됐기 때문에 지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17개 시도별로 1개 시설당 이용대상자 수를 수치화하면 불균형 현상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서울은 한 곳당 이용대상자수가 공연장 2만6199명, 영화관 12만3231명, 도서관 7만5050명, 박물관 8만1817명, 미술관 26만2676명에 달했다. 그 반면 부산은 공연장 5만3153명, 영화관 12만5289명, 도서관 10만9628명, 박물관 21만9256명, 미술관 70만1619명으로 인구대비 문화기반시설이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의원은 "지역간 문화시설 불균형이 매우 심각하다"며 "새로운 문화수요 창출과 문화향유권 증대를 위해 문화기반시설이 열악한 지방을 중심으로 재정지출이 이루어져야 하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문화콘텐츠 매출만 상승세…지역별 문화 육성 힘써야
지난 2분기 한국문화콘텐츠의 매출액이 24조원을 돌파했다. 수출액도 13억달러(1조4600억원)를 넘어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케이팝(K-Pop)으로 대표되는 음악 콘텐츠가 꾸준한 상승세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달 발간한 '2016년 2분기 콘텐츠산업 동향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2분기 콘텐츠산업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8400억원 증가한 24조4000억원으로 조사됐다. 수출액은 8000만달러 증가한 13억6000만달러로 나타났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3.6%, 6.4%씩 증가한 수치다.
1분기 콘텐츠산업 매출성장을 견인한 분야는 콘텐츠솔루션(12.2%), 음악(10.3%), 캐릭터(9.5%) 등으로 나타났다. 수출부문에서는 음악(105.7%), 방송(22.3%), 캐릭터(15.7%) 등이 큰 폭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6년 2분기 콘텐츠 상장사 매출액은 6조775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0% 늘어났고, 영업이익은 8029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4.8% 증가했다. 수출액은 5억227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1.5% 증가해 전반적으로 큰 폭의 실적성장을 기록했다. 콘텐츠 상장사들은 전 분야에서 2016년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증가했다. 특히 광고(36.1%), 음악(22.8%), 애니메이션·캐릭터(22.5%) 등의 성장률이 두드러졌다.
이처럼 수치로 표현되는 외형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인들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역별로 특색있는 문화를 육성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각 지역 '문화재단'(또는 문화관광재단)의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기만 해도 지방의 문화갈증은 다소 풀릴 것이라는 얘기다.
강원문화재단은 '우리가락우리마당' '강원문화예술활성화' 등의 지원사업과 '강원공연예술연습공간' 운영을 통해 도내 문화예술 단체··동호회·개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고, 부산문화재단과 충남문화재단도 각각 '시민 생활문화동아리 육성', '이제는 금강이다' 등의 프로그램으로 해당 지역 주민들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다만, 각 문화재단들의 사업이 아마추어식으로 운영되는 것은 시급히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출범한 전북문화관광재단의 경우 최근 발주 용역 결과물이 짜깁기 수준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부 항목이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자료를 인용해 조사와 서술문장만 고쳤다는 것이다.
강영수 전북도의회 의원은 "전라북도만의 고유한 콘텐츠를 발굴한다고 했지만, 실제 결과물은 고무신, 김치, 서낭당, 상여 등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콘텐츠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며 "재단이 앞으로는 면밀한 검토를 거쳐서 용역을 발주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