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울먹이면서도 국정 주도 의지 밝혀

2016-11-04 14:53
'알맹이 빠진' 9분짜리 담화…특정 개인의 위법 행위· 최씨와의 관계 '개인사'로 국한·하야 및 2선퇴진 일축

[사진=연합뉴스]



아주경제 주진 기자 =헌정 사상 최악의 지지율 5%를 받아든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춘추관에서 최순실 파문과 관련해 두번째 대국민사과를 했다.

회색빛이 감도는 짙은 카키색 정장 차림의 박 대통령은 입장 직후 목례를 한 뒤 어두운 표정으로 담화 원고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모든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검찰 조사와 특검도 받겠다고 밝혔지만 '필요하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 강제모금 논란을 의식한 듯 "저와 함께 헌신적으로 뛰어주셨던 정부의 공직자들과 현장의 많은 분들 그리고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업의 자발적 모금이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다시 언급하면서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특히 미르와 K스포츠재단 의혹에 대해 "국가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면서 "어제 최순실씨가 중대한 범죄혐의로 구속됐고,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 체포돼 조사를 받는 등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다'고 진술했지만, 박 대통령은 이 모든 의혹과 파문을 최씨와 일부 측근 참모들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박 대통령은 또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최순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청와대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해 가족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다"고 설명하면서 "홀로 살면서 챙겨야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씨로부터 도움을 받게됐고 왕래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줬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것이 사실"이라며 "돌이켜보니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최씨에게 건네진 대통령 연설문과 각종 기밀문건 유출 경위 등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박 대통령은 "그동안의 경위에 대해 설명을 드려야 마땅합니다만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자칫 저의 설명이 공정한 수사에 걸림돌이 되지않을까 염려해 모든 말씀을 드리지 못하는 것 뿐"이라며 "앞으로 기회가 될 때 밝히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 위기를 강조하면서 “국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 각계 원로와 종교지도자, 여야 대표와 자주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김병준 총리 후보 지명과 관련한 책임총리제나 2선 퇴진 등 내용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사실상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국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겠다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단상에서 내려온 뒤 마이크가 없는 상황에서 "여러분께도 걱정을 많이 끼쳐서 정말 미안한 마음"이라며 "이만 물러가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취재진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박 대통령이 9분 20초동안 읽어내려간 담화문에는 자신이 국정을 주도해야 한다는 원칙과 당위만 있을 뿐, '국정 공백'까지 이르게 된 데 대한 진정 어린 사과와 설명도, 향후 구체적인 계획도 제시하지 않은 '알맹이 빠진' 수사여구만 나열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