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밥 딜런…"문학 경계 넓힐 것" VS "순수문학 위축"

2016-10-17 09:55
'비문학인' 수상 놓고 찬반 논쟁…노벨상 의미, 문학성 기준 등 뒷이야기 무성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밥 딜런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가운데 그의 수상을 둘러싸고 '문학의 경계를 넓혔다'는 평가와 '순수문학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사진=노벨위원회 공식 누리집]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문학의 경계를 넓혔다" VS "순수문학을 더 위축시킬 것이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밥 딜런(75·본명 로버트 앨런 지머먼)이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가운데 그의 수상을 둘러싸고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딜런을 수상자로 발표하며 "미국의 위대한 음악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 왔다"는 짤막한 보도자료를 냈다. 케냐의 소설가 응구기 와 시옹오,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상황에서 '이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결과였지만, 한림원은 딜런의 문학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느낌표'를 짧고 강하게 찍은 것이다.

1962년 앨범 '밥 딜런'(Bob Dylan)으로 데뷔한 그는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 '더 타임스 데이 알 어 체인징(The Times They Are a-Changin) 등으로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포크록의 전설'이다. 특히 당대 청춘과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저항적인 노랫말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 "문학성은 표현 형식보다 담고있는 '정신'에서 찾아야"

딜런의 수상이 발표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내가 사랑하는 시인들 중 하나인 딜런에게 축하를 전한다"며 "그는 노벨을 받을 만하다"는 글을 올렸다. 영국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인 시인 앤드루 모션도 "딜런은 50년 이상 노랫말을 다듬어 서정시의 경지에 이르렀다. 노벨상은 이같은 천재성에 대한 가장 확실한 승인"이라고 평했고, 인도 출신의 영국 소설가 살만 루시디는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 때부터 시와 노래는 밀접한 관계였다. 딜런은 음유시인의 전통을 잇는 위대한 계승자다."며 칭송했다. 

노벨 문학상은 '부르주아 상'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주로 수여돼 왔다. 그러다가 1960~70년대부터 사회 불평등, 억압, 부조리 등에 저항한 시인, 소설가들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지난해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벨라루스)도 이런 경우다. 이런 점에서 한림원이 올해 딜런에게 영예를 돌린 것은 문학이 현실과 유리돼 있지 않으며, 앞으로 그 경계를 넓혀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문학평론가 정과리는 지난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상생활을 표현할 때 그것을 감동적으로나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는 방식으로 표현하면 그게 다 문학적인 것일 수 있고, 그런 점에서 노래도 역시 문학적인 정신을 담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벨의 유언은 인류의 위대하고 고결한 정신을 드높인 작가에게 상을 주라는 것이었다"며 "1960년대 반전운동과 기성세대의 낡은 질서에 저항했던 딜런은 노벨 문학상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밥 딜런                                                                                                [사진=연합뉴스]



◆ "순수문학 위축되는 악순환 가져올 것"

1901년 첫 시상 이래 노벨 문학상은 지금까지 113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중 딜런처럼 '비문학인'이 수상한 경우는 앙리 베르그송(1927), 윈스턴 처칠(1953), 장 폴 사르트르(1964) 등 일곱 차례였다. 사르트르는 '공적으로 주어지는 상을 줄곧 거부해 왔다'는 이유로 노벨상을 거절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공통적인 것은 이들이 수상자로 결정됐을 때마다 전 세계에서는 격렬한 찬반 논쟁이 일었다는 점이다.

딜런의 수상 소식에도 적지 않은 비난의 목소리가 들린다. 영국의 소설가 겸 칼럼니스트 윌 셀프는 "딜런은 사르트르의 뒤를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미국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라비 알라메딘은 "처칠이 상을 받았을 때처럼 어이없다"고 힐난했다. 

미국 소설가 조디 피코도 "(딜런의 수상은) 내가 그래미상을 탈 수 있다는 의미지?"라고 비꼬았고, 게리 슈타인가르트도 "(한림원의) 결정은 이해한다. 어차피 책을 읽는 건 어려울 일일 테니까."라고 조소를 날리기도 했다. 심지어 역사학자 팀 스탠리는 텔레그레프에 실은 '밥 딜런에게 노벨상을 주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미국 대통령 자리를 주는 것과 같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노벨상 위원회가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딜런에게 노벨 문학상을 줬다"며 날을 세웠다. 

국내 한 중진작가는 "안 그래도 문학 독자들이 줄어드는 마당에 작가보다는 대중가수로 이름을 날린 이에게 노벨상을 안기면, 어려운 환경에서 집필에 전념하는 시인·소설가들은 맥이 풀린다"며 한림원의 선택을 나무랐다.  

◆ 노벨상 특수 기대한 출판계 '아쉬움'
 
출판계는 다른 이유로 아쉬움을 토로한다. 잔뜩 '노벨상 특수'를 기대했지만 딜런의 저서는 지난 2010년 출간된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음반 업계가 기대감을 갖고 있다. 딜런의 작품 세계를 음악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문학상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도리스 레싱(영국·2007)과 앨리스 먼로(캐나다·2013) 등 독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작가들도 있었지만, 오르한 파묵(터키·2006),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2010년), 모옌(중국·2012), 파트리크 모디아노(프랑스·2014) 등 순수문학 안에서 대중성을 인정받은 작가들도 많았다.

딜런의 수상은 노벨 문학상이 과연 순수문학을 위한 것인지, 문학성의 기준은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지향해 갈 것인지 등을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