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푸미폰 국왕 서거..태국, 혼돈에 빠질까?

2016-10-14 10:24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사진=AP연합]


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재위 70년 만에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향년 88세의 나이로 현지시간 13일 서거했다. 국민 수천 명은 국왕이 사망한 병원 앞에 모여 “국왕만세”라고 외치며 통곡했다. 마하 와찌랄롱꼰 왕세자가(64)가 그의 뒤를 왕위를 계승할 예정인 가운데 태국의 정치 및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졌다.

◆ “아버지를 잃었다”
 

방콕 시리라즈 병원 앞에서 국왕의 서거 소식에 오열하는 태국 국민들[사진=AP연합]


국왕의 서거 소식은 현지시간 13일 오후 7시 태국 국영 방송에서 왕실 사무국의 성명 발표를 통해 알려졌다. 왕실 사무국은 “푸미폰 국왕이 병원에서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9일 국왕의 건강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나온 뒤 방콕 시리라즈 병원 앞에서 왕을 상징하는 노란색과 건강 회복을 상징하는 분홍색 옷을 입고 국왕의 쾌유를 빌며 기도를 올리던 태국 국민들은 비탄에 빠졌다.

서거 소식이 나온 뒤 더 많은 사람들이 병원 앞으로 몰려들었고 수천 명 국민들은 “국왕만세”라고 외치며 함께 오열했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부터 70년 이상 태국을 통치해왔기 때문에 태국 국민들은 다른 국왕을 상상하기 어렵다. 70세가 안 된 태국 국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푸미폰 국왕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살았던 것이다. 푸미폰 국왕은 태국에서 “국민의 아버지”이자 "정신적 지주"로 통한다. 

한 시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오늘 아버지를 잃었다. 국왕은 우리의 아버지였다. 자식들에게 최고의 아버지였다”며 “제발 기적이 일어나서 국왕이 우리 곁으로 다시 왔으면 좋겠다”며 말했다.

태국 정부는 애도 기간을 14일부터 1년으로 정했다. 공무원들은 애도를 표기하기 위해 1년간 검은 옷을 입어야 한다. 또한 30일 동안은 모든 축제가 금지된다.

2014년 군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13일 사회적 혼란과 동요를 우려해 국민들에게 침착할 것을 당부하며 안전에 유의하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경찰과 군대에는 누구도 이 불안정한 시기를 노리지 못하도록 보안 경계를 철저히 할 것을 지시했다.

정부는 13일 식당이나 카페 등에 자정까지만 영업을 하라고 지시했고 불야성을 이루던 방콕의 번화가들은 술집이나 클럽에서 나오던 음악 소리가 꺼지면서 적막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전했다.

◆ 후계자는 마하 와찌랄롱꼰 왕세자
 

푸미폰 국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마하 와찌랄롱꼰 왕세자[사진=AP연합]


푸미폰 국왕의 뒤를 이을 후계자는 마하 와찌랄롱꼰(64) 왕세자다. 푸미폰 국왕 부부의 유일한 아들로 1972년 공식 후계자로 지정됐다.

그러나 그가 푸미폰 국왕만큼 국민들의 절대적 사랑과 존경을 받는 왕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는 세 번이나 이혼 경력이 있는 플레이보이이자 작년에 죽은 애완견 ‘푸푸’에게 태국 군대의 공군대장 직위를 부여한 기이한 인물로 앞으로 태국 왕실과 현재 군사정권에게 가장 큰 도전과제가 될 수 있다고 가디언 등 외신들은 평가했다.

그는 지난 수십년 간 차기 국왕으로서 공적 임무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편력, 낭비, 제멋대로식 행동, 심지어 잔인함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실제로 자식들과도 불화를 일으켜 그의 자식들 중 여럿은 이름과 직위를 빼앗기고 망명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왕세자는 푸미폰 국왕이 보여줬던 카리스마와 헌신이 아닌 공포와 폭력을 통해 입지를 강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수개월 간 그는 일부 왕실 관련 인사 및 전처 가족을 숙청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앤드류 마샬은 “태국의 왕위 승계가 경착륙되고 정부와의 정치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태국이 다시 한번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앞으로 태국 경제는?
 

방콕에서 국왕의 서거를 알리는 신문을 팔고 있는 시민 [사진=AP연합]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의 서거는 정치적 불안정과 폭력 사태 속에서 성장률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 태국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들은 국왕의 서거로 태국이 급격한 동요를 겪으면서 경제가 악화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태국 경제가 미약한 성장률과 투자 부진에 빠지면서 동남아 지역에서 라이벌 국가인 베트남 등에 따라잡힐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일 푸미폰 국왕이 위독하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 이번 주에만 태국 증시는 6% 이상 급락했다. 바트화 역시 달러 대비 2% 이상 미끄러지면서 1월 이후 최저까지 내렸다.

특히 정치적 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지난 10년간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세워진 태국 행정부는 두 번이나 쿠데타로 밀려났고, 현 정부 역시 2014년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이 세운 것이다.

캐피탈 이코노믹스는 “푸미폰 국왕은 현재 군사정권에 정통성을 실어주었다. 지난 수십년 간 잦은 쿠데타에도 불구하고 내전으로 빠지지 않은 것은 푸미폰 국왕이 중재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0년간 태국의 투자 성장률은 연평균 3%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동남아 중 가장 느리다. 정치적 동요가 잦았던 만큼 인프라 개발이 늦었고 민간 투자자들도 투자를 꺼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관광산업이 540만 일자리를 책임지고 태국 GDP에서 약 10%를 기여하며 틈을 메워왔다.

그러나 태국 북부를 중심으로 한 빈곤 농민들과 방콕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 부유층의 정치적 갈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불안의 씨앗이 되고 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는 “정치 상황이 보다 분명해질 때까지 태국의 중기 전망을 낙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여타 애널리스트들은 왕위 승계 과정에서의 불확실성은 단기에 그칠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유라시아 그룹의 애널리스트들은 “보고된 것보다 태국 정부 기관들은 국왕의 죽음에 대비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며 “왕위 승계가 정치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안정적으로 이루어져 금융시장 변동성은 단기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