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YS 차남 김현철 “정권교체 도움 된다면 마다치 않고 달려갈 것…문재인, 3자 구도 시 유리”
2016-10-13 17:47
YS 차남 김현철 고려대 지속발전연구소 연구교수 인터뷰
아주경제 최신형·김혜란 기자=스스로 ‘경계인’이라고 고백했다. 세상 번뇌 시름을 잊고 청산에서 살고 싶었지만, ‘정치적 굴레’를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어쩌면 태생적 한계 탓에 애초부터 좁은 길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때때로 쓰라린 소금을 삼키듯 아픔을 숨겼다. 고독이 일상이 됐다. 자신을 숨기는 외딴섬으로 살았던 적도 적지 않았다. 조심스럽지만 자신을 둘러싼 족쇄를 풀고 조금씩 기지개를 켠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고려대학교 지속발전연구소 연구교수 얘기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거산(巨山·YS 아호)이 우리 곁을 떠난 직후 “민주화가 다시 불타고 있다”고 말한 김 교수는 본지와 1시간 30분간 진행한 인터뷰에서 “차기 대선에 도움이 된다면, 마다치 않고 달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차기 대선 때 제도권 정치 입문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아직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朴정부 불통, 70년대식 성장방식으로 회귀”
김 교수는 인터뷰 초반부터 서너 차례 던진 차기 대선 역할론에 관해 즉답을 피했다.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거산 서거 이후 YS에 대한 재평가에도 2세 정치인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 때문이었으리라.
그와의 인터뷰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됐다. ‘한국 정치사에서 19대 대선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느냐’라고 묻자,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후퇴 등 회귀 본능을 맹렬히 꼬집었다.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등 진보적 정책을 제시했지만, 아무것도 한 게 없다”며 “(공약 후퇴를 넘어) 경제체제가 70∼80년대식 성장 방식으로 돌아간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창조경제 등의 휘황찬란한 용어를 썼으나, 내용은 내실이 전혀 없었다”며 “그 결과 서민과 중산층 고통은 가중됐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5년 전 화두인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등의 체제 논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박 대통령이 한국 정치사의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총선과 대선은 다르다…安, 캐스팅보트 어려워”
김 교수는 한국 정치사에서 여론조사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맞붙었던 1987년 대선 이후 정당 여론조사기구의 시초로 불리는 ‘중앙조사연구소’를 세웠다.
그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1987년 쌍용증권에 입사했지만, YS의 대선 출마로 휴직한 뒤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김 교수는 “당시는 사 측이 안전기획부(안기부·현 국가정보원)에 일일 리포트를 통해 동향보고를 하던 시절”이라고 귀띔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김 교수는 이를 전화위복으로 삼았다. 신기술이 접목된 여론조사를 통해 소선거구 도입 이후 첫 선거였던 1988년 총선 때 DJ의 평화민주당(평민당)이 YS의 통일민주당을 꺾고 제1야당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최종 결과는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 125석, 평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이었다. 지금과 같은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을 정확히 맞췄다.
김 교수는 “1987년 대선 때 야당이 주먹구구식으로 선거에 임했다. 군중동원이 일반화된 시기였다”며 “87년 양김 단일화 실패로 정권교체에 실패하면서 야권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보자는 생각으로 여론조사를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쯤 돌직구를 날렸다. ‘문재인 대세론의 실체 여부’를 물었다. 김 교수는 “분명히 있죠”라며 “3자 구도 시 ‘여권 어부지리’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난 반대다. 3자 구도로 가면,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총선과 대선은 다르다. 이번 총선에서 보듯이, 영남에서 야권, 호남에서 야권 인사들이 일부 당선되지만, 대선은 단 한 명을 뽑는 선거다. 지역구도가 총선보다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가 야권표를 더 많이 흡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가 풀어야 할 과제로는 ‘외연 확장’을 꼽았다. 이 밖에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등의 정치적 공간 확보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潘총장, 대망론 실천 어려워…YS 시대정신 유효”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과 관련해선 “개인적으로 몇 차례 뵌 적이 있는데, 평생을 정통 외교관으로 살아왔다”며 “지지도만 보면 실체가 없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검증 과정에서 대망론이 실천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피력했다.
여의도의 뜨거운 감자인 문 전 대표와 손잡고 영·호남 민주화 세력 복원에 나설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김 교수는 2012년 대선에서 “민주세력이 이겨야 한다”며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였던 문 전 대표를 지지한 바 있다. 4·13 총선을 앞두고는 경상남도 거제 출마설 등이 돌았다.
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YS의) 통일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5공 청문회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게 아니냐. 3당 합당에 반대해 꼬마민주당으로 분화해 나갔지만, (현 더민주와 민주계 세력의) 뿌리는 같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아버님이 서거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바로 선거를 나가기가 쉽지 않았고, 출마할 명분도 필요했다.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디로 갈지 깊은 얘기를 할 단계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문 전 대표를 도울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며 웃었다.
김 교수는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등 문민정부의 역사적 과제 준비는 물론, 1996년(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의 개혁공천을 단행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해 민중당 소속의 이재오 전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수임검사였던 안상수 창원시장,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 등이 이때 발탁된 인물이다.
그는 “문민정부의 시대정신은 ‘개혁’과 ‘변화’였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지금은 정치·경제·사회·문화에 퍼진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바로잡고 YS의 유훈인 ‘통합’과 ‘화합’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족쇄처럼 따라다니는 ‘한보 사태’와 관련해 “특혜 대출 등 권력형 비리 의혹은 결국 검찰에서 무혐의로 결론 났다”며 “지금도 ‘소통령’ 등의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 ‘김현철의 미래상’을 보여줘 과거를 불식할 수밖에 없다. 비판은 내 업보다. 안고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