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공룡 CJ①] 제작비 전액 지급했으니 저작권 수익도 다 내 꺼!

2016-08-03 08:52

CJ는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사진=CJ 기업 광고 캡처]


아주경제 김은하·정진영 기자 = “문화를 만듭니다.”

CJ가 내세운 기업 슬로건이다. 기업 전체 슬로건으로 문화를 내걸 만큼 CJ는 CJ E&M을 필두로 문화 사업에 전력을 쏟았고, 빛나는 성과를 이뤘다. 특히 방송 부문은 tvN을 주축으로 한 18개의 채널로 지상파의 단단한 카르텔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과정은 이들이 내건 슬로건과 달리 그리 문화적이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CJ E&M과 작업한 복수의 외주 제작사는 아주경제에 “CJ E&M과 작업하면 외주 제작사가 영상제작자로서 저작권을 거의 소유하지 못 한다”고 토로했다. 저작권이 콘텐츠를 만든 제작사가 아닌 콘텐츠를 튼 CJ E&M에 있는 이유는 ‘돈’이다. CJ E&M은 제작사에 제작비를 100% 지급함으로써 수익과 저작권, 부가 사업권 등을 독식하고 있었다.

물론 제작비를 댄 쪽이 저작권을 갖는 건 일견 당연하다. 제작사가 제작비 수급을 위해 쓸 시간을 줄이고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CJ E&M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CJ E&M이 드라마 제작을 위해 설립한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 관계자는 “지상파의 경우 제작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우리는 외주 제작사가 필요로 하는 제작비를 모두 제공하며 외주 제작사와의 공생에 힘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제작사 A의 관계자 역시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수익 창출 여부가 불투명해 제작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CJ E&M 쪽에서 제작비를 전액 부담한다고 해 촬영에 돌입할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부작용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제작비를 부담한 비율만큼 수익을 나누는 것이 업계의 관행인지라 CJ E&M이 억지로 쥐어준 전액 제작비 때문에 외주 제작사는 어떠한 수익 배분도 요구할 수 없게 됐다.

제작사 대표 B 씨는 “‘제작비 100%를 받아가라’는 CJ E&M에게 제작비를 함께 부담하자고 요구하면 ‘그럼 다른 방송사에서 틀라’는 식의 답변이 돌아온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지상파 편성이 불투명한 콘텐츠라면 더욱 그렇다”고 토로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권한을 온전히 CJ E&M이 갖다 보니 자체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 포맷을 눈 뜨고 빼앗기기도 한다. CJ E&M 보유 채널에서 방영된 유명 시즌제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한 제작사 대표 C 씨는 “CJ E&M이 추후 시즌 제작을 공개 입찰로 돌려 우리보다 적은 제작비를 써낸 제작사가 제작을 맡았다.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을 다른 제작사가 만들다니…도둑맞은 기분이었지만 CJ E&M이 제작비를 대고 저작권을 모두 가져갔기 때문에 손 쓸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CJ E&M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제작비 100% 지급은 외주 제작사의 상생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올해 송출한 작품 중 제작사와 함께 제작비를 분담한 콘텐츠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엔 “그 부분은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대답을 피했다.

억지로 쥐어준 제작비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도 문제다. 제작사에서 최소 150억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콘텐츠에 대해 CJ E&M은 제작비 120억을 책정, 125억을 주면서 “120억으로 만들고 5억은 너희 가져”라는 식인데 제작사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제작사 이사 D 씨는 “CJ E&M이 줄 수 있는 만큼만 제작비 주고 나머지는 외주 제작사에서 충당할 수 있게 해주면 좋으련만 그게 허락되지 않으니 CJ E&M이 제시하는 제작비에 프로그램을 말 그대로 억지로 맞출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프로그램 질의 하락이 우려되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D 씨는 “부족한 제작비에 치이고 CJ E&M의 요구에 또 치이다 보면 마치 CJ E&M의 하청 업체로 전락한 기분”이라고 고백했다. CJ E&M이 만들고 싶은 ‘문화’가 무엇인지 확실치 않지만 편성권을 이용해 외주 제작사를 압박하는 문화는 아닐 것이다.

※ 본지와 인터뷰한 외주제작사들은 “기사가 나가면 ‘방송사 욕을 하고 다니는 제작사’로 낙인찍혀 CJ E&M은 물론 다른 방송사와의 관계도 틀어질 수 있다. 을인 우리를 보호해 달라”며 A제작사 B대표식으로 익명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