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연 “20대 국회 상법·형법 개정 최우선 과제는 ‘배임죄’”
2016-08-02 14:00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한국판 페이스북 등 혁신기업 배출을 위해서는 배임죄부터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의도적으로 회사에 손실을 끼치지 않는 이상 경영판단으로 간주해야 모험적 투자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 원장 권태신) 부원장은 한경연 주최로 2일 오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 토파즈룸에서 ‘경제활성화를 위한 배임죄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통해 “배임죄는 정상적인 경영행위까지 위축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에 20대 국회에서 형법·상법을 개정할 경우 배임죄 개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갑윤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축사를 통해 “19대 국회에서 배임죄 기준을 명확히 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기업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폐기됐다”며, “20대 국회에서도 배임죄를 다룰 ‘형법 개정안’을 재 발의하는 등 배임죄 개선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발제자로 나선 신석훈 한경연 기업연구실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들이 경제침체를 극복하고 투기자본의 공격으로부터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경영권 보호제도를 강화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배임죄 처벌 등을 통한 경영권 통제에만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실장은 “특히 배임죄와 관련해 대다수의 선진국들이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합리적인 경영판단이 사후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결과를 야기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원칙이다.
신 실장에 따르면, 현재 독일과 호주의 경우 경영판단의 원칙이 회사법에 명문으로 규정돼 있다. 또 미국과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에서도 판례를 통해 경영판단의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9월 유럽연합(EU)이 8년간의 논의 끝에 발표한 유럽 모델회사법(EMAC)초안에도 경영판단의 원칙이 포함돼 있다.
신 실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대법원이 2004년 기업인의 배임죄를 판단할 때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2002도4229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대법원 판결들을 보면 경영판단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지 않다”며, “독일과 호주의 사례와 같이 경영판단의 원칙을 상법에 명문화해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손동권 건국대 교수도 “우리나라는 상법상 특별배임행위에 해당하는 건에 대해서도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을 적용하는 등 가중처벌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상법에 경영판단 원칙을 입법화할 경우 정당한 면책사유가 있는 경영판단행위에 대해 배임죄가 무리하게 확대 적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신 실장은 형법상 배임죄 적용에 대해 “의도적으로 회사에 현실적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에만 배임죄가 적용되도록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기업 경영자는 기업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 모험거래, 기업인수(특히 차입매수)등을 감행해야 하는데 이러한 행위들이 해악적 행위로서 매도되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연강흠 연세대 교수는 “경영판단은 결과가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결정하는 사전적 판단이므로 법원이 이미 발생한 결과만을 두고 사후적으로 배임죄를 적용하면 기업의 투자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배임죄 적용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현 숭실대 교수는 “기업의 경영활동에 대해 형사상 배임죄 적용보다 기업의 내부통제시스템 확충, 선진국의 민사·상사법적 제도의 모델연구와 적용을 통해 경영판단 실패의 사전예방이나 손해 확산의 저지를 위한 법제도 활용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는“배임죄 규정은 실패의 두려움을 배가시켜 기업인들에게 성공가능성이 높은 안전한 투자를 선호하게 한다”며, “우리나라도 스티브 잡스나 주커버그와 같은 혁신적인 기업가를 배출하려면 배임죄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승재 세종대 교수는 “기업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높일 수 있도록 경영자 책임의 적정화가 필요하다”며 “민사책임을 넘어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