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기가 아일랜드 500일, 백령도 가보니

2016-08-09 05:00

지난 7월31일 촬영한 백령도의 KT 사무소. (사진=한준호 기자) 


아주경제 한준호 기자(백령도) = 지난달 30일 북한 옹진반도와 불과 11㎞ 거리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 백령도.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을 맞아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많았지만 짙은 안개 탓에 여객선 코리아킹호의 출항이 예정보다 2시간 가량 지연되면서 오후 2시10분 백령도 용기포신항에 발을 내디뎠다.

2015년 3월에 KT가 구축한 백령도 ‘기가 아일랜드’가 지난달 28일로 500일을 맞았다. 기가 아일랜드는 도서 지역에 KT의 기가(GiGA) 인프라를 결합해 교육, 문화, 경제, 건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 주민의 생활을 더욱 편안하게 만드는 지역 사회공헌 프로젝트다. 황창규 회장의 연임가도에 날개를 달아줄 회심의 역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편리함을 넘어 편안함을 누리는 세상'은 백령도 기가 아일랜드가 내세운 슬로건이다. 지난 100일에 이어 400일 만에 다시 찾은 섬주민들의 삶은 얼마나 편안해졌을까. 하영숙 할머니는 스마트워치로 혈압과 심박수를 체크해 건강 관리를 잘하고 계실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다시 찾은 백령도는 그러나 여전히 스마트 세상과는 거리가 먼 고독한 섬이었다.

◆ 실체 없는 ‘기가 헬스케어’
백령도는 주민 5400여명이 살고 있지만 이 중 20%가 노년층인데다 의료 인프라도 의료원과 보건소 각각 1개로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KT는 정보통신기술(ICT)를 접목한 ‘기가 헬스케어’로 개인 건강관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KT는 가장 먼저 백령도 거주 노인 100명에게 삼성전자 ‘기어S' 스마트워치를 배포해 운동정보와 심박수 등을 측정하는 건강 정보 관리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마트워치로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실시간으로 가족과 의료기관에 정보를 전송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노인 100명이 항상 스마트워치를 손목에 차고 다니는 것이 대전제다.

하지만, 500일을 맞아 찾은 백령도 주민들의 손목에서 스마트워치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지난해 스마트워치를 지급 받은 하영숙 할머니(85)는 “시계에 표시된 달력이 계속 1월로 나오고, 시간이 잘못 표시돼 이제 더 이상 차고 다지니 않는다”며 방 안에 고이 모셔둔 스마트워치를 꺼내 보였다. 5분마다 심박수를 측정하려면 늘 손목에 스마트워치를 차고 다녀야 하지만 그는 포기했다.
 

7월 말에 찾은 백령도. 하지만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는 1월 2일을 가리키고 있다. 표시된 시간도 약 30분 정도 빨랐다. 날짜와 시간이 정확하지 않은 스마트워치로는 정확한 심장 박동수 측정은 불가능하다.  (사진=한준호 기자)


하 할머니는 “전에는 남들이(다른 99명) 아무도 안차도 열심히 손목에 차고 다녔지만, 이젠 날짜와 시간 표시까지 틀려먹었으니, 시계대용으로도 차고 다닐 수 없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왜 고장 났는지를 묻자 “나는 만지지도 않았다. 밥을 안줘서 그런 것 같다”며 오히려 스마트워치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자기 자신을 나무랐다.

다른 주민은 “노인들이 스마트워치를 제대로 조작할 수 없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뭔가 해결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걱정됐다”며 “내가 볼 땐 스마트워치는 전혀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스마트워치는 왜 이렇게 배터리 수명이 짧은지 모르겠다. 아침 저녁으로 두 번 충전해야 겨우 사용할 수 있는데 누가 쓰겠냐”며 “스마트워치를 차고 다니는 노인을 본 적이 없는데 다 비슷한 이유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KT관리자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관리하지 않았는지를 묻자 "올해 3월경 집에 찾아와 시계를 찬 내 모습을 사진에 담아가기는 했다"고 설명했다.

또 KT가 ‘기가 헬스케어’의 일환으로 소변으로 간단히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당뇨 검진 솔루션 '요닥 서비스'를 백령도에 도입했지만, ‘요닥 서비스’ 자체를 모르는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자가 사진을 찍기 위해 오랜만에 스마트워치를 손목에 찬 하영숙 할머니. (사진=한준호 기자)


◆ 있으나 마나 ‘올레CCTV’
KT는 백령도 주요 포구 3곳에 올레 CCTV 10대를 설치해 HD(고화질)급 카메라로 어민들의 선박 상태를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PC,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태풍으로 인한 선박의 유실과 도난을 막기 위해서다.

백령도 동남쪽 용기포 선척장에서 막 수확한 소라를 손질하는 어민들에게 CCTV의 활용도를 묻자 그들은 “보긴 보지만, CCTV가 저 멀리 해양경찰청 지붕과 옆 건물에 설치돼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때 선박이 안보이거나 콩알처럼 보인다”며 입을 모았다. 선박이 있는 곳에서 CCTV까지의 거리는 200~300미터 떨어져있다.

 

용기포 선척장에 장착된 CCTV는 실제 선박과 200~300미터 가량 떨어져 설치돼 CCTV로 선박 확인이 불가능하다. (사진=한준호 기자) 


그 중 한 어민은 “3~4개월 전부터 KT의 담당자에게 CCTV 위치를 배가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달라고 사정했지만 소식이 없다”며 “솔직히 말해 CCTV가 너무 멀어서 있으나 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령도 서북단의 두무진 포구에 선박을 묶어 놓은 한 어민은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엔 스마트폰 앱으로 두무진 포구에 설치된 CCTV 영상을 자주 확인해 도움이 되고 있다”며 기자에게 스마트폰 어플을 꺼내 보여줬지만, 이마저도 카메라 4대중 2대 영상은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한 어민이 스마트폰 어플로 CCTV에 비춘 선박을 보여줬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사진=한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