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87 체제][下] 개헌, 차기 대권 흔든다…국회·대통령 ‘임기 양보’ 최대 변수

2016-06-22 18:08

정세균발(發) 개헌론이 여의도 정가의 마운드 정중앙에 꽃혔다. 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시작된 이 개헌 게임 상황은 22일 현재 선공에 나선 야권의 입장에선 ‘무사 1, 2루 진출’이다. 정 의장의 첫 안타를 등에 업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개헌 특위’를 제시하며 도루에 성공했다. 여기다 국민의당도 박지원 원내대표 등이 개헌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어 3루타도 시간 문제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16일 오전 국회 접견실에서 의장 취임 후 열린 첫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


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87년 헌법이 올해로 29돌을 맞았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의 산물인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와 평화적 정권 이양. 언론의 자유 보장 등 8개항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이 실현됐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담보하는 대통령 직선제가 최고법인 헌법에 규정된 셈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87년 체제 이후 문민정부를 시작으로,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섰지만, 모두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폐단을 드러냈다. 승자독식 ‘불변의 법칙’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이유다. 이에 아주경제는 총 3회 기획을 통해 개헌의 당위성을 되짚고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실천적 목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정세균발(發) 개헌론이 여의도 정가의 마운드 정중앙에 꽃혔다. 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시작된 이 개헌 게임 상황은 22일 현재 선공에 나선 야권의 입장에선 ‘무사 1, 2루 진출’이다. 정 의장의 첫 안타를 등에 업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개헌 특위’를 제시하며 도루에 성공했다. 여기다 국민의당도 박지원 원내대표 등이 개헌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어 3루타도 시간 문제다.

반면 ‘현재 권력’을 등에 업은 집권여당으로선 야권에 비해선 개헌론에 속도 조절을 하는 모습이다. 이미 개헌 이슈를 선점 당한 마당에 ‘볼 넷’으로 거르며 한 두점 내주더라도 신중한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13 총선 참패 이후 유력한 대선 주자가 없는 터라, 섣불리 ‘투수 교체’도 감행할 수 없는 탓도 있다.

여권으로서는 분출된 개헌 이슈에 대해 더 이상 시간 끌기만 하기 힘들어졌다. 이미 여의도의 대세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연합뉴스가 20대 국회의원 300명 전수조사 한 결과, 전체 의원의 83.3%인 250명의 답이 그러했다. 개헌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이 찬성,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실질적 공감대가 조성된 셈이다.

이 같은 정치권의 공감대에도 불구, 핵심 의제인 ‘권력구조 개편’을 두고선 ‘백가쟁명’식 의견이 난무하고 있다. 1987년 헌법 체제에 따른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따른 ‘제왕적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을 두고 차기 대권주자들의 이해 관계가 모두 엇갈린다.

야권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등은 눈앞에 온 미래 권력을 생각하면‘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반면 ‘대권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김부겸 더민주 의원은 대통령 4년 중임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본능적 거부감’이 크다며 내각제를 주장한다. 정계복귀 초읽기에 들어간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도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를 선호하고 있다.

여권에선 유력 대권주자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2014년 10월 중국 순방 당시부터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해오고 있다. 특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여권 후보로 부상하면서 이원집정부제가 한층 탄력받고 있다.

여권 내 잠룡인 남경필 경기지사는 ‘한국형 새 모델’을 주장하면서도 ‘분권형 대통령제’를, 원희룡 제주지사는 대통령 직선제에 내각제 요소를 가미한 ‘대통령 직선 내각제’를 각각 선호한다. 반면 유승민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지난 30년간 익숙했던 대통령제를 바탕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주장한다.
 

대권 경쟁구도에서 사실 최대 난제는 개헌의 ‘적용 시기’다. 어떤 방식의 권력구조 개편안이 정해지든, 적용 시기에 따라 국회의원과 차기 대통령의 ‘임기 양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개헌론이 불붙었지만, 당장 차기 정부에 적용하자는 여론은 내년 대선주자들에겐 큰 부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대 국회 개원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대권 경쟁구도에서 사실 최대 난제는 개헌의 ‘적용 시기’다. 어떤 방식의 권력구조 개편안이 정해지든, 적용 시기에 따라 국회의원과 차기 대통령의 ‘임기 양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개헌론이 불붙었지만, 당장 차기 정부에 적용하자는 여론은 내년 대선주자들에겐 큰 부담이다.

현재 국회의원들의 선호도(연합뉴스 전수조사, 전체 의원의 41%)가 가장 높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차기 정부에 적용하려면, 2017년 12월 예정된 19대 대선 직후 국회의원을 새로 뽑아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키자는 개헌 취지에는 부합하지만, 현 20대 국회의원 임기는 반 토막 나게 된다.

국회의원 임기 보장을 위해 ‘차차기 정부’부터 개정 헌법을 적용하면, 차기 대통령의 임기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내년 대선 후보에겐 막대한 손해다. 2020년 4월의 총선에 맞춰 20대 대선을 치르려면 2019년 12월 시행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차기 대통령 임기는 무려 3년이 깍이게 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개헌의 핵심이 권력구조 개편인데, 자신의 권력을 양보하면서 개헌을 도입할 지는 여야 불문 대선주자 모두에 부담스러운 일”이라면서 “내년 대선에서 누구든 ‘임기 양보’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개헌 논의는 또 자초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로 인해 내년 후반기 유력 대선주자들이 1~2인으로 압축되기 전, 개헌 논의가 마무리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권력욕이 높아지면 개헌 의지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학자인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은 “내년 유력한 대선 주자들이 본격 활동을 하기 이전이야 말로 개헌을 논의할 적기”라며 연내 개헌론에 힘을 실었다. ‘개헌 전도사’인 우윤근 국회 신임 사무총장도 “내년부터 정치인들이 오직 대통령 만들기에 혈안이 되기 때문에 (개헌 논의는) 올해가 적기”라며 “내년 4월 보궐선거 때 국민투표를 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대선 전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보다, 차기 대권주자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들의 심판을 받고,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매듭짓자는 목소리도 크다. 김부겸 의원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 출마자들이 각기 개헌 공약을 하고 당선자는 임기 중에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