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적 징벌적 손해배상제 물꼬 트였다…한국판 ‘존슨앤존슨’ 판결 나오나

2016-06-16 18:00
박영선, ‘징벌적 배상법 제정안’ 발의…국민의당도 법 도입 긍정적
대기업 反사회적 불법행위 근절되나…기업 중심으로 반발 거셀 듯

신현우 옥시레킷벤키저 전 대표가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16년 만에 여소야대를 맞은 20대 국회 초반 전면적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의 물꼬가 트였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란 기업의 악의적이고 반(反)사회적인 행위로 손해를 입었을 경우 실제 피해액보다 더 많은 배상금을 물도록 하는 제도다. 특정 법률에 구속받지 않고 반사회적 행위를 한 기업에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법정 배액배상제로 나뉜다. 현행 하도급거래공정화법의 3배 손해배상제도가 후자와 유사한 법이다.

특히 거대 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20대 국회 들어 경제민주화와 공정성장을 위한 법적 수단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를 조짐이다.

하지만 실손해배상을 핵심으로 하는 현행 민사소송법 체계와 충돌한다는 주장이 있는 데다, 국회가 개인의 손해배상 소송을 이용해 기업에 대한 형벌권을 실현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의가 자칫 정치권과 기업, 보수와 진보의 갈등 등 사회적 비용만 유발할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박영선, '징벌적 배상법' 발의…3배 배상금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징벌적 배상제도의 전면 도입을 골자로 하는 ‘징벌적 배상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2의 옥시 사태를 방지하고 기업의 반사회적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개별 입법으로 일부 영역에 한정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전면적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정법은 전면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고 배상액은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타인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결과의 발생을 용인할 경우 징벌적 배상책임을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소송의 전문성과 복잡성을 고려해 변호사 강제주의도 채택하도록 했다. 이 밖에 △법원에 의한 직권 증거조사 인정 △문서제출 명령의 요건은 완화, 증거보전의 권한은 폭넓게 인정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앞서 같은 당 백재현 의원도 지난달 30일 손해배상의 수준을 실제 손해액의 12배 이내로 규정하는 제조물 책임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20대 국회가 5월 30일 개원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를 맞은 20대 국회 초반 전면적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의 물꼬가 트였다.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tlsgud80@]


◆국민의당도 가세…기존 민사법과 상충 우려

국민의당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채이배 의원과 당 정책위원회는 지난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소비자집단소송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쟁점과 도입방향'이란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안철수 상임 공동대표는 이 자리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범위를 확대하고 액수를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두 야당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놓고 경제민주화 주도권 쟁탈전에 나선 셈이다.

문제는 법의 실효성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비롯해 폭스바겐 리콜 사태 등 대기업의 반사회적 행태에 대해 응징하는 철학의 기초 아래서 파생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주권을 쟁취해야 한다는 논리다.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지방법원 배심원단이 지난달 3일(현지시간) ‘존슨앤존슨’ 제품 사용으로 난소암에 걸린 여성에게 5500만 달러(약 627억 1100만 원)를 배상하라고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선 대륙법인 한국 법체계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할 경우 기존의 법과 상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출발은 영미법이었다. 하도급법을 비롯해 소비자보호법 등에 유사한 법체계가 있는 상황에서 법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과도한 벌금을 금지한 연방수정헌법 제8조를 둘러싼 위헌 시비가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면적 손해배상제 관철을 위한 난제가 산적한 셈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징벌적 배상제도의 전면 도입을 골자로 하는 ‘징벌적 배상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진은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20대 총선 당선자 대회. [사진=아주경제 유대길 기자 dbeorlf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