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오승환, 메이저리그 ‘베테랑 신인’의 품격

2016-05-24 06:05

[시애틀 매리너스 내야수 이대호. 사진=연합뉴스(AP) 제공]

아주경제 서민교 기자 = 미국 메이저리그가 의심했던 이대호(34·시애틀 매리너스)와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놀라운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다. 한국산 동갑내기 ‘베테랑 신인’의 품격이다.

내야수 이대호와 투수 오승환은 포지션은 달라도 걸어온 길의 공통점은 많다. 각자 위치에서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를 평정한 뒤 빅리그 꿈을 위해 도전했다. 부와 명예를 모두 누릴 수 있는 서른 중반의 늦은 나이에 많은 것을 포기했고, 또 잃을 수 있는 위대한 도전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둘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랐다. ‘과연 통할까’라는 의구심이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찬사 속에 극진한 대우를 받았던 그들이 편견과 맞서야 했다. 또한 전성기가 지난 시점에서 꿈의 무대를 노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현실적인 환경과 대우도 달랐다. 이대호는 ‘초청선수’에서 극적으로 ‘40인 로스터’ 진입에 성공해 겨우 신분 상승했고,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 보직을 내려놓고 추격조와 승리조를 가리지 않는 중간 불펜 투수 보직을 맡았다.

메이저리그 개막 이후 40경기를 넘긴 시점에서 미국 현지의 이대호와 오승환을 향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의심은 놀라움으로 바뀌었고, 그 놀라운 반전은 확신으로 돌아서고 있다.

힙합에서 ‘Respect(리스펙트·존경)’라는 표현은 중요한 개념이다. 확고한 기준을 지키며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음악세계를 정립한 아티스트에 대한 경의와 존경의 의미다. 이대호와 오승환은 ‘리스펙트’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이대호는 시애틀 구단의 플래툰 시스템에 의한 들쭉날쭉한 출전에도 경기 감각을 잃지 않고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미 시즌 초반 짜릿한 끝내기 홈런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대호는 지난 21일(이하 한국시간) 신시내티 레즈전에서는 대타로 나서 결승타와 홈런을 터뜨려 팀 승리를 책임졌다.

이대호는 시즌 26경기에서 타율 0.254(59타수 15안타) 6홈런 12타점 9득점을 기록했다. 출루율 0.302와 장타율 0.559를 더한 OPS도 0.861을 기록 중이다. 스캇 서비스 시애틀 감독도 비싼 몸값의 주전 1루수 애덤 린드(타율 0.221·3홈런·OPS 0.580)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이대호를 대놓고 쓸 수 없는 애매한 처지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투수 오승환. 사진=연합뉴스(AP) 제공]

오승환의 위상도 시즌을 거듭할수록 치솟고 있다. 오승환에 대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평가도 낮았다. 시속 150㎞ 전후의 구속과 투 피치(직구와 슬라이더) 구종으로 메이저리그 강타자들을 압도하기 힘들 것이라는 섣부른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오승환은 그 어떤 메이저리그 불펜 투수보다 강렬한 돌직구를 꽂고 있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오승환 앞에서 쩔쩔매며 두 눈을 뜨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헛스윙을 하기 일쑤다.

최근 8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오승환은 시즌 21경기에서 구원 등판해 22⅓이닝을 소화하며 1승 6홀드 평균자책점 1.19를 기록했다. 삼진 31개를 잡는 동안 볼넷은 7개밖에 없었고, 아직까지 피홈런은 단 1개도 허용하지 않았다. 송곳처럼 미트에 꽂히는 완벽한 제구의 결과물이었다.

미국 현지 언론도 오승환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ESPN은 23일 “오승환이 세인트루이스의 임시 마무리 투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마무리 투수 트레버 로젠탈이 나오지 못하는 날 고민을 덜어줄 팀의 수호신이라는 의미다.

ESPN은 “오승환은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 0.8로 메이저리그 불펜투수 중 6위, 삼진율(36.5%)은 12위, WHIP(이닝당 출루 허용·0.72)은 10위로 매우 인상적인 기록”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오승환은 팀이 2-7로 져 메이저리그 마무리 등판 기회를 미뤘다. 이대호도 결장했으나 팀은 5-4로 이겨 4연승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