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은 정부만의 구호?…20대 국회 '문화예술 정책 부재' 민낯 드러내

2016-04-26 01:00
"표 안 되는 '문화' 크게 신경 안 써"…경제·안보 등에 밀린 씁쓸한 문화 공약

4·13 총선에서 각 정당들은 '문화는 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약 개발과 제시에 인색했다. '문화융성'이 화두인 시대에 비추어 본다면 초라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작품 검열, 표현의 자유 침해, 예술인 노동권, 콘텐츠 유통 독과점 등 산적한 과제들을 20대 국회에서는 어떻게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일 서울 한식문화관에서 열린 제5차 문화융성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문화로 아름다운 나라'를 꿈꿨던 백범 김구의 이 말은 작금의 한국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것임이 분명하다. 특히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문화융성'에 비추어 본다면 이번 20대 총선에 등장한 문화·예술 공약은 초라하다는 평가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공약다운 공약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공약은 '입법 계획'이 중요한데, 그럴싸한 공약들도 찬찬히 뜯어보면 입법 계획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아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며 "20대 국회가 문화 부문의 그림을 어떻게 그려갈지 염려된다"고 덧붙였다. 

◆ '문화' 외피를 두른 경제 공약…재탕·삼탕 콘텐츠 정책 
각 정당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문화·예술 분야의 것이라기보다는 경제·복지 분야의 '건립' 공사에 가깝지만, 그나마 '문화공간 확대'가 공통적으로 자주 언급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은 소외지역 유휴공간을 소규모 복합형 문화공간으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폐교·폐시설을 활용해 문화소외지역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하겠다는 것이다. 정의당도 지역문화 격차를 없애고, 생활예술 활성화를 위해 유휴공간 활용 공약을 내놓았다. 원내 진입은 실패했지만 노동당도 유휴공간을 활용해 문화센터를 설립하고 활동가를 파견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문화예술인 지원 공약도 간간이 눈에 띤다. 더민주는 예술인 강사 처우 개선, 근로 형태에 따른 조합 결성 보장 추진, 청년문화예술·문화콘텐츠 종사자를 위한 창작환경 개선과 활성화 공약 등을 세웠다. 정의당은 문화예술인 노동기본권 보장, 예술인 사회보장제도 개혁으로 문화예술인 사회보장과 일자리 창출을 해내겠다고 약속했다. 노동당은 문화예술인에게 4대 보험을 적용하고 문화예술작업에서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할 것을 공약했다. 

콘텐츠산업에는 원내 다수당인 더민주와 새누리당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더민주는 콘텐츠중심 미디어 생태계 구축을 위해 콘텐츠 제작과 유통질서를 확립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또 방송광고시장 합리화를 통해 미디어 공공성과 산업성을 확보하고 유료방송 시장 투명성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역시 '주장'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산업 특성상 제작자와 수용자 플랫폼을 나눠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런 고민이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새누리당은 '케이컬처밸리'(K-Culture Valley) 조성을 콘텐츠산업 공약으로 내놨다. 이를 통해 융복합 미디어 콘텐츠와 쇼핑‧문화를 아우르는 한류 콘텐츠를 집적, 한국관광의 랜드마크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공약은 콘텐츠가 아니라 관광분야에 들어가 있다. 콘텐츠를 관광의 하위개념으로 보는 기존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문화융성위원회는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 한류월드 부지에 1조원을 투자해 케이컬쳐밸리를 조성한다고 발표했었다. 이는 '한류 우려먹기'가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똑같은 사업이 주요 정당의 총선 공약으로 '재탕'된 셈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는 "이번 총선엔 '관심 제로'였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주요 정당들의 문화 공약이 빈약했다"며 "다수당인 더민주와 새누리당은 문체부가 추진 중인 사업들, 예를 들면 예술인 복지 개선, 일자리 창출, 취업 기회 증대, 한류 콘텐츠 발굴 및 강화 등을 기반으로 평이한 공약들을 반복적으로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 예술가 일자리 창출…더민주 '공공부문 확대' 새누리 '민간주도'
청년 예술가들의 고용 문제는 여야 모두 관심을 보였지만 해결책은 달랐다.

새누리당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청년예술 일자리지원센터를 신설하고 향후 전국 예술대에 이를 확산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일자리지원센터에서 청년 예술가들에게 구직정보를 제공하고 콘텐츠관련 창업경연대회도 개최한다는 것이다. 또 기업이 추구하는 문화예술사업에 청년 인력을 제공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메세나 수요도 파악해 공연‧전시 예술가들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예술계의 풀리지 않는 숙제인 '일자리'를 국가는 뒷짐지고 민간에만 의존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민주는 문화예술‧체육‧영화‧미디어제작 근로자의 특수고용 의제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사회보험 특례를 이들에게 확대 적용하겠다는 말이다. 고용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다른 직업군과의 형평성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가 보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 창출에 있어 민간을 앞세운 새누리당과 달리 더민주는 지역문화협동조합 설립으로 공공부문 문화사업 참여확대를 이끌겠다고 밝혀 전문가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국민의당은 1000개의 지역 문화예술 일자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고, 정의당은 문화예술인 노동기본권 보장, 예술인 사회보장제도 개혁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노동당은 문화예술인에게 4대 보험을 적용하고 문화예술작업에서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할 것을 공약했다. 또한 예술강사의 사용자를 문화예술교육진흥원으로 명확히 해 노동법 적용, 강사료 현실화, 휴업 수당·유급휴일수당·퇴직금·실업급여 등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19대 국회 공약 이행률 51%…새 국회, '지속가능한 예술' 토대 만들어야
총선이든 대선이든 한국 선거사에서 '경제'는 핵심의제로 매번 부각됐다. 20대 총선에서도 "문제는 경제"였고,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이슈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선거에 매니페스토평가단으로 활동한 조현수 평택대 무역·물류학과 교수는 "(각 정당들이)한마디로 '문화는 표가 안 된다'고 보고 경제, 안보 등에 올인한 선거였다"며 '몰이식' 선거가 된 것을 비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언젠가부터 '인문'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책만 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문화 전반이 성장해야 하는데, 국회는 '문화공약'이라는 씨앗을 잘 가꿔 풍성한 나무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총선에서 전체적으로 문화 공약이 빈약한 가운데 김세연(부산 금정, 새누리당), 김학용(경기 안성, 새누리당), 김태년(경기 성남 수정, 더민주당), 안민석(경기 오산, 더민주당) 당선자들의 공약이 눈길을 끈다.

김세연 의원은 △마을 역사를 기록하는 작은박물관 건립 △작은도서관 확대 △관내 초중고 오케스트라 창단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지역주민들로부터 "지역사회에 밀착한 세밀한 공약이 든든했다"는 호응을 이끌어냈으며, 김학용 의원은 △구포동 성당 세계문화유산 등재 △봉업사지 발굴조사 △죽주산성 역사공원 추진 등을 제시해 지역 특성을 잘 살린 공약을 내놨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김태년 의원은 문화의 거리 조성, 남한산성 연계 옛길 복원 밑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렸고, 안민석 의원은 독산성 세마대 복원, 오색시장 문화관광지 조성 등 지역주민의 가려운 곳을 문화로 잘 긁어주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들은 모두 20대 국회에서 교문위에서 활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따르면 19대 국회의원 239명의 총선공약 8481개 중 지난해 말 기준으로 완료된 공약은 4346개(51.24%)에 불과했다. 이제 공은 20대 국회로 넘어갔다. 정치·경제·외교·국방 등에 비해 늘 '후순위'인 문화 부문의 공약들은 얼마나 지켜지게 될까. 

이동연 교수는 "작품 검열, 표현의 자유 침해, 예술인 노동권, 콘텐츠 유통 독과점,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 등이 쫓겨나는 현상), 도시재생 문화 등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며 "국회의원들이 이런 것들을 지혜롭게 풀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예술'의 토대를 만들고 관련 정책과 시민 문화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