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조양호 “시스템에서 움직이고 시스템으로 움직여라”

2016-03-30 11:28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57)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한진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신혼여행객이 결혼식을 마치고 여유롭게 떠날 수 있도록 출발시간을 밤 시간대로 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대한항공이 몰디브 취항을 앞두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제안했다. 조 회장은 경영과 관련한 전과정을 꿰뚫고 있는 ‘디테일에 강한 경영자’다.

정석(靜石)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의 장남인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18년간 경영수업을 받은 뒤, 1992년 대한항공 사장에 올랐다. 이후 1999년 대한항공 회장을 거쳐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다음 해인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올랐다.

가업을 물려받았지만 조 회장은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구축하며 기업을 이끌어 왔다. ‘기업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갖춰 가꿔나가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아무리 2세라도 자격이 없으면 기업을 이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전문경영인 시대로, 실무를 모르고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며 “업무 내용을 정확히 파악한 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경영자의 기본조건”이라고 말한다.

특히 항공사는 여타 제조업과 달리, 전문적인 경영능력 없이 권위만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는 특수 업종이라고 강조한다.

조 회장은 기체에 대해 항공 전문용어로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을 갖춘 실무형 리더다. 취항지를 결정할 때 직접 나서기도 한다. 미국 취항지를 선정할 때 허름한 모텔에서 자고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18일간 6000마일(9600km)을 손수 운전해 미국 곳곳을 살핀 일화는 유명하다.

40여년간 전세계를 누볐지만, 그는 아직도 작은 도시 한곳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베트남 하롱베이, 터키 이스탄불은 조 회장이 직접 발로 뛰어 하늘 길을 개척한 곳으로 꼽힌다.

조 회장은 "최고경영자는 비전을 제시해 기업을 이끌어야 한다"며 시장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해 왔다.

2003년 2월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취임 3개월만에 에어버스의 항공기인 A380을 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A380은 좌석수 500석 이상의 초대형 항공기다. 당시 미국의 9·11테러 사태 여파로 어수선한 상황이었고, 항공 업황도 좋지 않았다.

주변에서 반대했지만, 그는 곧 대형 항공기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밀어 붙였다. 5년 후인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가 점차 회복되며 그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대한항공은 선발주한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최신 항공기를 도입할 수 있었다.

조 회장은 “미국식보다 독일식 경영을 하라”“시스템에서 움직이고 시스템으로 움직여라” 등의 말도 자주 한다.

똑같은 인력과 보유자재라도 최대한 활용해 한진그룹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것이며, 개인에 의해 업무가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탄탄한 기업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또 “쉼없는 전진만이 격차를 줄이는 첩경이며, 조금이라도 자만하거나 방심하면 언제든지 도태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국제적인 마당발인 조 회장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평창올림픽 유치에 앞장서는 등 선친의 ‘수송보국(輸送報國)’창업이념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