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싸움 구경…‘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2016-03-24 16:46

[사진=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스틸]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마블과 미국 코믹북 시장의 양대산맥이라 불리면서도 영화 시장에서는 일찌감치 마블에게 우위를 내준 DC코믹스의 야심작이다. 마블의 히어로 ‘토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는 물론 이들이 모두 등장하는 ‘어벤져스’가 스크린을 장악하는 동안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었던 배트맨, 슈퍼맨, 원더우먼이 모두 등장한다. 시작일 뿐이다. DC코믹스는 내년 ‘저스티스 리그’로 자사 히어로를 소집한 후 ‘원더우먼’(2017), ‘플래시’(2018년), ‘아쿠아맨’(2018년), ‘사이보그’(2020)로 캐릭터 각각의 매력을 보여줄 계획이다.

배트맨과 슈퍼맨의 싸움이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것이 싸움 구경이라는데 심지어 같은 편으로 여겨졌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운다는데 오죽할까. 이런 이유로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감독 잭 스나이더)은 기대감을 잔뜩 품게 하지만 실상은 버거울 만큼 무겁고, 참을 수 없이 지루하다.

둘이 싸우는 이유는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가 달라서다. “신이 정말 강하다면 착할 리 없고, 착하다면 강할 리 없다” “영원히 착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배트맨은 절대 정의로 여겨지며 신격화된 슈퍼맨이 선을 행하다 발생한 불가피한 사고에 분노한다. 슈퍼맨은 악당을 잡아 낙인을 찍고, 때때로 고문도 하는 배트맨이 시민을 공포에 빠지게 한다고 생각한다. 슈퍼맨이 여자 친구를 구하다가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면서, 둘의 갈등이 촉발한다.

각본가 데이빗 S. 고이어의 말처럼 거의 모든 히어로영화는 엄청난 전쟁 후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너무 쉽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파괴 후에 남은 상흔에 집중하는 것, 의도를 가지지 않는 정치성을 돌아보는 것, 절대적으로 여겨졌던 도덕적 신념에 상대성을 제기하는 것…‘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의 시작은 의미 있고, 호기로웠지만 결말은 무의미하고 허무하다. 박 터지게 싸우던 둘은 어머니의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니까.

풀어가야 할 이야기가 산더미인데 거기에 문제를 또 얹는다. 죽은 아버지보다 더 나이 든 배트맨, 아버지의 망령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슈퍼맨, 강한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악당 렉스 루터까지…세 주인공을 아버지의 그늘로 묶으면서 엄청난 이야기를 할 것 같은데, 그뿐이다.

욕심을 꾹꾹 눌러 담은 영화라 대사 한마디, 장면 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러닝타임 151분 동안 한순간도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 여느 히어로물을 보듯, 찰나의 짜릿함과 시원한 통쾌함을 기대하고 스크린 앞에 앉았다가는 예상치 못한 버거움에 허덕거리는 것은 물론, 헐겁게 연결된 이야기 줄을 놓치기 십상이다.

영화의 무게에 압사당할 때쯤, 원더우먼이 등장한다.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그녀에게 열광하기에는 이미 늙고 권태에 빠진 배트맨과 녹색 물질, 크립토나이트 앞에서 맥없이 쓰러지는 슈퍼맨에게 실망한 후다. 악랄한 말장난과 교묘한 농담을 내세워 자신의 부와 권력을 악행을 위해 이용할 줄 아는, 젊고 영민한 악당 렉스 루터만이 유일한 숨통이다.

배트맨과 슈퍼맨의 싸움으로 관객을 홀렸으면서, 영화는 끝끝내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패자는 확실하다. 이 영화에 2억5000만 달러를 쏟아 부는 제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