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박은관 “Why not us? 왜 우리는 안 되는 거죠?”

2016-02-25 08:30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37)

박은관 시몬느 창업자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시몬느’는 해외 명품 핸드백 시장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루이뷔통, 마이클코어스, 마크제이콥스, 도나카란뉴욕(DKNY), 버버리, 겐조, 코치, 지방시, 폴로 등 국내에서도 유명한 명품 브랜드 핸드백의 60%는 시몬느가 만들고 있다. 시장 점유율은 당연히 세계 1위다.

박은관 시몬느 창업자는 핸드백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인 청산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첫 출장지였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장인정신과 예술이 깃든 이탈리아의 패션문화에 매료됐다.

아버지 사업을 돕기전 3년만 다니겠다던 그는 7년간 근무했다. 이 때 기회가 찾아왔다. 박 창업자의 성실함과 능력을 눈여겨봤던 해외 거래처 중 한곳에서 생산물량을 댈테니, 직접 회사를 차려보라고 제안한 것이었다. 사장은 물론 아버지도 권유해 1987년 시몬느를 창업했다.

처음에 어떤 제품을 만드느냐는 시장에서 회사의 포지셔닝을 어떻게 갖고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박 창업자는 처음부터 세계 1등 브랜드를 거래처로 잡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당시 가장 큰 화제를 일으키며 급성장하던 DKNY를 타깃으로 잡았다. 그러나 논의를 시도할 담당자조차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열 번, 스무 번 연락 끝에 박 회장은 아예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최고급 백화점에서 DKNY 가방 6개를 구입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개발실 장인들과 똑같은 제품을 만든 후, DKNY 마케팅 담당자를 찾아가 바로 가방을 내밀었다. 꼼꼼히 살펴본 담당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박 회장은 담당자에게 “우리는 이 가방을 유럽보다 30~40% 저렴한 가격에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담당자는 품질이나 거래조건 모두 마음에 들어했지만, 상부 보고 후 돌아온 대답은 ‘없었던 일로 하자’였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은 아니지만, 막상 그런 얘기를 들으니 박 회장은 억울했다. 그냥 물러설 수 없었다.

며칠 후 박 창업자는 다시 담당자를 찾아갔다. “앞으로 핸드백 제조시장은 변한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아시아 제조기반을 가져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은 명품 핸드백 제조와 거리가 먼 나라다. 하지만 볼로냐나 플로렌스의 120년된 공방도 처음 시작한 누군가는 우리처럼 맨땅에서 일군 것 아닌가? 우리도 안 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체 생산량의 1%만 달라는 그의 제안에 DKNY는 반신반의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120개 핸드백 물량을 받아 귀국했다. 6개월 후, DKNY 디자이너가 시몬느를 방문했다.

그는 하청업체가 제품개발과 생산을 모두 담당하는 ODM을 시몬느에 제안했다. 1988년 4월이었다. 아시아시장에서 럭셔리 핸드백을 개발하고, 제조한 첫 회사가 된 순간이었다.

DKNY 이후 시몬느는 랄프로렌, 마이클코어스, 마크제이콥스, 케이트스페이드 같은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를 거래처로 삼을 수 있었다.

명품시장은 품질과 디자인만큼이나, 생산지(원산지)가 어디냐가 중요하다. 세계시장에서는 최고급 제품에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찍히면 안 된다고 말했고, 박 창업자는 이제는 아시아 제조기반을 갖춰야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며 맞선 끝에 멋지게 승리했다.

박 창업자의 이런 설득 논리는 우리는 왜 안되느냐는, “Why not us?”라는 표현으로 회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