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폭행·출산 숨겼다고 무조건 혼인취소 안돼"
2016-02-22 14:10
아주경제 이동재 기자 = 결혼 이주여성이 한국에 오기 전 성폭행당해 출산한 사실을 시댁에 알리지 않았더라도 남편이 혼인 취소를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김모(41)씨가 부인 A(26)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혼인을 취소하고 A씨가 위자료로 300만원을 주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에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두 사람은 국제결혼중개로 2012년 2월 A씨 모국인 베트남에서 결혼했다. A씨는 같은해 7월 한국에 입국해 시집살이하다가 이듬해 시아버지에게 성폭행과 추행을 당했다. 시아버지는 징역 7년이 확정됐으나 재판 과정에서 A씨의 과거 출산 경험이 드러났다.
A씨는 열세 살 때 베트남 소수민족 남자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다. 이른바 '약탈혼'을 당한 것인데 8개월 만에 친정으로 도망친 뒤 아들을 낳았다. 그 뒤로도 남자가 계속 찾아와 식당 등지에서 일하며 지냈고 아들은 남자가 데려갔다고 A씨는 주장했다.
남편은 A씨가 맞선 당시는 물론 결혼 이후에도 출산 사실을 숨겼다며 혼인 취소와 위자료 3000만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민법상 '사기로 인해 혼인 의사표시를 한 때'에는 법원에 혼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A씨는 시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했는데도 남편이 방치했다며 이혼과 위자료 1000만원을 청구하는 맞소송을 냈다.
1·2심은 "출산 경력은 상대방의 혼인 의사결정에 중대한 고려요소에 해당한다. 출산 경력을 알았다면 김씨가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성폭행으로 출산한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채 무조건 사기 결혼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출산 경력이나 경위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고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 부분"이라며 "단순히 출산 경력을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민법상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임신과 출산 경위, 자녀와의 관계 등을 충분히 심리했어야 하는데 혼인 취소 사유가 있다고 쉽게 단정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