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차량산업위기] ⓶ 글로벌 기업들의 한국 철도망 사업 진출 야심

2016-02-18 06:00

현대로템이 제작 공급한 경춘선 열차[사진=현대로템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일본 산케이 신문이 왜 현대로템에 대한 날선 비판 기사를 내보냈는지에 대한 의문은 한 달여 시간이 지난 뒤에 풀렸다.

바로 지난 4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이었다.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은 향후 10년간(2016~2025년) 철도망 구축의 기본 방향과 노선 확충계획이 담겨있다. 정부는 철도운영 효율성을 제고하고 주요 거점 간 고속이동서비스 제공, 대도시권 교통난 해소, 철도물류 경쟁력 강화 및 통일시대 대비 한반도 통합철도망 구축 등을 위해 기 시행사업 49개와 신규사업 32개 등 총 81개의 추진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계획에 투입될 예산은 국고 53조7000억원, 지방비 4조원, 민간투자 6조9000억원을 포함한 총 74조1000억원으로 추정됐다. 여기에는 새로 착수할 32개 노선 투자비 27조8000억원도 포함됐다. 당초 지난해 7월 발표될 예정이었던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은 정치권에서 총선 전에 계획을 발표하거나 아예 이후로 연기해달라는 민원 등이 빗발쳐 한 차례 미뤘다가 이번에 발표했다. 국토부는 교통연구원이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수립 연구 최종안을 마련하는 대로, 관계기관 협의와 전략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올 상반기 중 구축계획을 확정해 고시할 예정이다.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사업 참여 위한 포석
지금까지 한국의 국토개발의 중심은 고속도로를 비롯한 각종 도로의 건설이었다. 정부는 도로망은 웬만큼 완성됐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 계획부터 철도 건설에 무게를 실을 전망이다. 기존 노선의 개량 및 신노선 개발이 이뤄지면 궤도를 달리는 철도차량 수요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KTX 사업을 통해 한 단계 도약을 이뤄낸 한국철도제조산업은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을 통해 정체상태인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그 기대를 해외기업들도 하고 있다.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글로벌 철도차량 업체들에게 있어서 한국은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진출이 자유롭다.

한국은 지난 1994년 ‘세계무역기구 정부조달협정(WTO GPA)’에 가입할 당시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과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양허대상에 포함시키더니 2016년 1월 14일부터 발효된 개정된 WTO GPA에 서울 메트로, 서울 도시철도공사, 인천 메트로, 부산교통공사, 대구 도시철도공사, 대전광역시 도시철도공사, 광주 도시철도공사 등 철도운영 공기업을 추가했다.

WTO GPA의 양허대상에 속하는 관련기관들은 발주 공사입찰에 국내업체에 비해 외국 업체가 차별받지 않도록 동등한 조건을 부여해 시장진입의 장애요소를 철폐해야 한다. 철도차량 선진 국가들이 자국철도산업 및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에 개방을 하지 않는 것과 정반대다. 철도산업은 최초 생산과 더불어 수 십 년에 걸쳐 유지보수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한 번 참여하면 상당한 기간 동안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 일본, 캐나다, 독일 등은 물론 중국 업체들까지 한국에 들어왔거나 들어오려고 하는 이유다.

◆‘현대로템 독과점’ 집요히 비판
그런 글로벌 기업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버티고 있으니, 다름 아닌 국내 유일의 철도차량 완제품 생산업체인 현대로템이다.

1999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당시 구조조정을 통해 현대와 대우, 한진의 사업부를 통합해 출범시킨 현대로템은 최근까지 국내에서 필요로 하는 철도차량을 독점 수주해왔다.

법적으로는 진입이 자유롭지만 글로벌 기업들은 현대로템의 벽에 막혀 번번히 사업 진출을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했고, 이들 기업들의 본사가 소재한 각국 정부와, 현대로템에 불만을 갖고 있는 국내 기업들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IMF외환위기 당시 초과공급설비 투자로 과잉상태에 있던 철도차량산업을 구조조정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철도차량 사고 및 고장에 따른 운행 중단이 연이어 벌어졌고, 이러한 사태의 원인은 독과점의 폐단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자연스레 글로벌 기업들의 논리가 먹혀들었다.

철도차량산업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적이 완전히 근거없는 주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100% 맞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로템 독과점 문제는 통합법인 출범 당시부터 제기된 것이 사실이었고, 이에 업계에서도 경쟁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당시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라면서 “그런데 독과점을 물고 늘어지는 논리를 가장 활발히 펼치고 있는 세력의 배후에는 해외업체들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자사의 이익을 챙기고 한국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현대로템 독점 폐지 여론을 뒷받침 하는 논리를 제공했고, 일부 언론들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현대로템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를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이 같은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그들의 보도는 결국 한국 진출을 추진중인 자국 철도차량 제조업체를 측면에서 지원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하다”면서 “글로벌 해외기업들은 자국 정부의 지원으로 성장해 왔지만 이런 점은 철저히 숨긴 채 한국 정부에 시장을 더 확대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비즈니스 세계는 치열하다. 철도산업 또한 다양한 이들의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엮여있다. 시장을 두고 벌이는 전쟁을 뛰어넘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경쟁에서 현대로템을 비롯한 219개 국내 철도차량 관련 업체들은 글로벌 기업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