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열린 성이 다시 열리기를

2016-02-17 14:00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개성은 ‘열린 성’이다. 개성은 고구려시대에 ‘동비홀’, 도비구루(두비구루)로 불렸는데, 여기서 도비(두비)는 “열다”, 구루는 “성”이라는 뜻이다.

결국 개성은 ‘열린 성’‘열려진 곳에 있는 성’이라는 뜻의 한자어 지명이다. 개성이 왜 ‘열린 성’이었을까? 예성강이 개성을 휘돌아 서해로 빠져나가고, 끝자락에 있던 국제무역항 ‘벽란도’(碧瀾渡)를 통해 송과 거란, 아랍의 배들이 들락거렸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인삼, 부채, 종이, 화문석 등 특산품이 거래됐다. 즉 개성은 세계로 열려 있는 성이었다.

개성이 한반도의 중심이었던, 그리고 고려의 수도였던 당시에 25평방키로미터의 면적에 30만 명 정도가 살았다. 당시 유럽의 큰 도시들이 3만에서 10만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개성은 인구밀도가 높고 거대한 도시였다. 그만큼 개성을 중심으로 교역이 활발했고, 물산이 풍부했다고 할 수 있다.

개성이 열린 도시였음은 외국인의 귀화를 장려하고, 외국인을 관료로 등용하는 가하면,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도 허용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또 고려시대 개성에서는 매년 11월15일에 ‘팔관회’라는 불교의식이 행해졌는데, 이 행사를 계기로 외국 상인이 초청을 받아 서로 선물을 주고받고, 무역을 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고려(‘코레아’)라는 이름을 널리 홍보했다.

개성상인(송상)들은 장사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그러다 보니 ‘가게쟁이’라고도 불렸다. 이 ‘가게쟁이’라는 말이 ‘깍쟁이’라는 말로 변형됐는데, ‘장사를 잘하는 얄미운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개성상인들은 사개치부법(四介治簿法)이라는 오늘날의 ‘복식부기법’을 서양의 베네치아 상인들보다 먼저 개발해 활용했다. 그만큼 개성상인의 계산이 합리적이고 정확했다는 것이다. 지난 2013년에 개성상인 가문이 보유한 19세기 복식부기 회계장부 14권이 발견돼 주목을 끌기도 했다.

개성상인은 17세기 중반 이탈리아까지 진출했다. 오세영의 역사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에 나오는 얘기다.

17세기 ‘프란체스코 카를레티’라는 이탈리아 사람이 남긴 여행기에 임진왜란 당시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던 조선 청년을 데리고 로마에 돌아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에 더해 17세기 중반에 그려진 루벤스의 ‘한복입은 남자’에서 모티브를 얻어,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개성상인이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 로마로 건너가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이름으로 무역업에 종사했고 집성촌을 이뤄 정착했다는 역사소설이 탄생했다. 참으로 그럴싸하다.

현재 우리나라에 가장 널리 알려진 ‘개성상인’은 화장품 하나로 중국의 13억 인구를 휘어잡고 있는 ‘아모레퍼시픽’(구 ‘태평양화학’)의 설립자 서성환 회장이다.

또 동양제철화학의 이회림 회장, 신도리코의 우상기 회장, 삼립식품의 허창성 회장, 세방여행사의 오세중 회장 등도 개성상인 출신이다.

지난 1000년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개성상인의 철학은 ‘한 우물’을 파고, ‘신용’을 최고의 상도로 삼았던 것이다. 천년을 버텨온 개성상인의 철학이 요즘 현대 경영학의 기본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 ‘열린 성’이 닫혔다. 1945년 남북 분단으로 닫혔던 ‘개성’이 2003년 6월 개성공단 개발을 시작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작년 말 기준으로 124개 업체가 5만5000여명의 북측 근로자를 고용해 연간 5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우리가 입는 속옷의 90%가량이 개성공단에서 만든 것이라고 할 정도로 개성공단과 대한민국 경제는 깊숙이 연결돼 있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대부분 섬유업종의 영세기업들로서 200달러 안팎의 저렴한 인건비에다 우리말이 통하는 우수한 노동력을 다른 곳에서 새로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어서 참으로 곤란한 처지다.

북한 주민들에게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의 우수함을 알리고 체험하게 했던 생생한 학습장이 사라졌다.

개성공단은 특히 남북간 첨예한 군사적 대립과 긴장을 ‘남북경협’과 ‘상생’의 모델로 풀어냈던 ‘창조적 해법’이었기에 더욱 아쉽다.

요즘 저성장과 내수 부족으로 한국경제의 앞날이 안보인다고 아우성이다. 그럴수록 2500만 명의 잠재시장인 북한에 주목해야 한다. 그 열린 통로가 바로 개성이었다. 지난주에 갑자기 닫혀버린 ‘열린 성’이 조만간 다시 열리기 바란다. 경제가 열리면 군사, 정치, 통일도 언젠가는 열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