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이양구 “인간에게는 모든 것을 종합하는 조화의 능력이 있다”
2016-02-01 07:59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22)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과자를 제가 배달해드릴 테니 대금은 보름 후에 주세요.”
해방 후, 38선으로 남과 북이 나뉜 직후였다. 함흥에서 왔다는 젊은이는 한 마디로 외상거래를 제안했다. 상인으로서는 보름 동안 돈을 돌려 쓸 수 있으니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젊은이는 그 날부터 그곳에 과자를 공급할 수 있었다.
타향에서 자전거 한 대로 사업을 시작한 젊은이. 주인공은 바로 서남(瑞南)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자였다. 남한에서 최초로 외상거래를 도입한 서남은 이를 ‘수형거래(手刑去來)’라 이름 붙였다. 판매 전략이 남다른데다가 성실함과 근면함을 인정받아 거래선은 날로 늘었다. 그렇게 1년간 모은 600만 원으로 서남은 동양식량공사를 설립해 1950년 한국전쟁 직전까지 자본금 10억 원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나 전쟁이 나면서 모든 것이 날아갔다.
설탕과 과자 판매로 기반을 잡은 서남은 1957년 삼척세멘트(현 동양시멘트) 인수를 추진했다. 삼척세멘트는 당시 남한내 유일한 시멘트 공장이었으나 시설이 매우 낙후되어 가동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인수자금 부담은 물론 대규모 추가 투자가 필요해 민간기업이 맡기에는 위험도가 큰데, 시장에는 외국에서 수입하거나 원조 받은 시멘트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판로도 부정적 전망이 컸다. 동업자들이 손을 때겠다며 강렬히 반대했다.
서남의 생각은 달랐다. 삼척은 풍부한 자원과 삼척화력발전소로부터의 동력을 쉽게 확보해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바다를 끼고 있어 해상운송의 편리하다는 이점을 살리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를 인수한 서남은 민간기업 최초로 DFL(미국의 유상원조) 차관을 받아 낙후 시설을 교체하고 설비를 증설했다. 업계 생산과잉 및 경기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정부가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자 시멘트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서남은 생전에 “인간에게는 모든 것을 종합하는 조화의 능력이 있다”, “기업은 오케스트라와 같다” 등의 지론을 펼쳤다. 그는 회사 모든 임직원이 서로 협력함으로써 회사를 평화롭게 발전시켜나가기를 희망했고, 서로 인간적으로 의지가 되는 회사를 꿈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