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코리아>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새마을운동의 해외 진출, 신창조경제 선도"

2016-01-19 07:54

 

 

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은 공직생활의 시작을 새마을운동으로 시작했으며, 새마을운동이야말로 신창조경제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한국농어촌공사]


새마을운동이 이 시대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새마을운동을 강조한 바 있지만, 46년 전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에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수식어구가 따라붙는다. 새마을운동이야말로 창조경제의 시발점이라는 주장이 나와 주목되고 있다.

해외에 소개되는 새마을운동을 활용해 그 나라에 새로운 산업을 개발시키는 길이야말로 우리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동시에 민간자본의 투자 확대를 이끌 수 있는 방안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새마을운동을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으로부터 '진화하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될 무렵부터 농림부 사무관을 시작했다. 그 당시 상황을 말해 달라.

"새마을 운동이야말로 한류의 원조라고 할 수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이렇다하게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나마 농업과 농촌 지역에 퍼져나간 새마을 운동이 빠질 수없는 항목이라고 생각된다. 그 경위는 내가 펴낸 책 <내 일생 조국의 산들바람을 위하여>에 자세하게 나와 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뒤에 가난의 상징인 ‘보릿고개’로 대변되는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것. (민생고 해결은) 박 전 대통령에게는 평생의 염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에 공을 많이 들였다. 혁명공약 제4항은 ‘절망과 기아 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였을 정도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를 위해 크게 세 가지 특징으로 대표되는 정책을 시행했다. 첫째는 사람 중심이었다. 둘째는 대외 지향 즉 수출 지향적이었다는 것이고, 셋째는 농공병진이었다. 나는 이 세 가지 중 농공병진이 적절했다고 생각했다.

나로선 1971년 농림부 행정사무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거의 처음으로 맡은 업무가 농림부의 ‘새마을 소득증대’분야였다. 그리고 1973년부터 75년까지 약 3년 동안 새마을소득과의 주무 계장으로 근무했다. 특히 정부가 1966년에 시작한 농어민소득증대특별사업, 즉 농특사업도 오랫동안 담당했다."

새마을 운동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주요 특징 등에 대해 말해 달라.

"새마을운동은 1970년 당시 내무부가 주관했던 ‘새마을 가꾸기 사업’을 시발점으로 볼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해 4월에 전국지방장관회의를 주재하고 그 자리에서 전국 3만4000개 자연부락에 시멘트와 철근 등을 일괄적으로 지급하고 공동빨래터 등 10개 예시사업을 정해 시행하도록 한 것이 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마을 단위의 사업을 1년 뒤에 평가를 했는데, 각 마을마다 성과가 달라졌다. 정부는 그 뒤 마을의 성과에 맞춘 지원을 시작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새마을운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가 1971년 4월 22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새마을 운동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전에 그 당시 군사정부가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이 농어촌 고리채 정리였다. 당시 입도선매(立稻先賣)가 예사였고, 농사철에는 영농자금 대신 연리 50% 이상의 악성 고리채인 장리가 농어민의 허리를 휘게했다. 농어촌 고리채 정리 법령에 따라 연리 20% 이상은 모두 고리채로 규정됐고, 농어민은 신규융자를 내 빚을 갚은 뒤 12% 이자만 부담하고 나머지 8%의 금리차액은 정부가 부담한 것이 농어촌 고리채 정리의 주요 내용이었다. 새마을운동은 이렇게 농어민들이 자립을 할 수 있도록 한 뒤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기억나는 것이 가뭄대책이다.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는 4대강 사업이 그 당시 농업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들의 자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아무리 정부가 주도한다고 해도 농민들로서는 소득증대 등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자발적인 참여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을 담당하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은데, 기억나는 것이 있나?

"앞서 잠깐 이야기했던 마을단위의 성과를 분석한 것 중에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마을마다 똑같은 시멘트와 철근을 지급했는데 10% 정도는 본래의 목적대로 움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마을을 ‘자립마을’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자립마을이 되었는지를 분석한 결과 마을분위기가 원래 그런 곳이었고 무엇보다 마을을 끌고 가는 존경받는 지도자가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또한 그 지도자를 도우는 중심세력이 있었던 것도 특징이었다. 여기에 착안해 정부가 시행한 것이 새마을지도자 교육이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두 가지 회의를 직접 주재했는데 첫째가 수출진흥확대회의였고, 두 번째가 월례경제동향보고회의였다. 월례경제동향보고회의에는 전국의 시도지사도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 반드시 새마을지도자를 참석시켜 표창을 하고 성공사례를 발표하도록 함으로써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성공사례는 일반 사람들도 ‘저렇게 하면 되겠다’는 의식을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1971년부터 73년까지 새마을지도자 교육을 담당했는데, 농촌의 새마을지도자들은 3주일 동안 합숙 훈련을 받았다. 당시 장관들도 1주일동안 합숙 훈련을 했다. 요즘같으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최근 해외에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이 수출되고 있다.

"새마을운동이야말로 한류의 원조라고 표현했다. 아마도 세계에 알려진 한국의 긍정적 이미지 중에서도 상위에 오른 것을 보면 세계적인 한국브랜드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단순하게 농어촌을 개발하는 것으로 소개된다면 그것은 새마을운동을 잘못 인식하는 것이다. 새마을운동의 본질은 ‘의타심을 버리는 것’이다. 즉 자립이 가장 큰 덕목인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잘 살아보자는 것이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대외원조 등과 묶이면서 본질이 훼손되고 있는 느낌이 강하다. 자원이 빈약한 국가에 동기부여를 만들어주고 가난을 타개할 수 있는 방식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새마을운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의 경우 우리의 새마을운동이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 베트남은 지난 2010년부터 ‘신농촌정책’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새마을 운동을 접목한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에 이와 관련된 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 백서 내용 중 정책 성공에 기여를 한 인사들의 목록이 나오는데,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내 이름이 올라가 있다. 베트남 정부가 신농촌정책의 수립에 앞서 여러 가지 정책 자문을 구할 때 내가 도와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제공=한국농어촌공사]


새마을운동이야말로 새로운 창조경제를 이끌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베트남의 성공 사례에서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새마을운동의 해외 진출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발도상국들의 농촌을 직접 돌아본 결과 무엇보다 사회적인 기반, 즉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데 이것은 공공재정에서 지원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도 공감을 하더라. 이를 위해 현재 우리나라가 대외에 원조를 해주는 KOICA와 협력할 필요가 있다. 김영목 코이카 이사장과도 여러 차례 이와 관련해 협의를 한 적도 있다. 인프라 구축과 관련해 한국농어촌공사의 역할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농어촌공사는 물과 도로, 지역개발 등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기관이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을 해외에 진출시킬 때 정부의 대외원조뿐 아니라 민간기업도 같이 갈 필요가 있다. 신재생에너지사업과 ICT를 융합할 경우 새로운 기회, 새로운 산업 개발의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1월 우간다 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새마을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융복합 사업에 대해 소개를 했더니 적극적인 수용 의사를 밝혔다."

새마을운동 지원을 계기로 그 나라에 산업을 개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우간다의 예를 들면, 그 지역은 쌀이 주작물로 적합하지만 쌀을 경작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쌀을 경작하기 위해서는 경지 정리와 수리시설 정비 등이 필요하다. 대외원조 프로그램을 통해 경지정리를 하고 민간기업과 함께 수리시설 정비와 본격적인 쌀농업에 나선다면 우간다에 새로운 산업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는 것이다. 이같은 새로운 시장은 우간다 뿐 아니라 우리의 새마을 운동을 받아들이고 싶은 모든 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새로운 산업 창출은 중국의 성장 둔화와 미국의 금리인상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 경제에도 큰 활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좁은 국토의 내수시장 회복에만 경제성장을 바랄 것이 아니라 해외로 눈을 돌려,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주고, 그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야말로 창조경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해외에서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지게 되면, 청년들도 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청년실업 해소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진출의 새로운 방법으로 민간자본의 해외 진출도 있다. 아르헨티나에 우리 정부가 구입한 농장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 구입했지만 경제성 등으로 인해 개발을 하지 못했는데 그동안 여러 가지 상황이 바뀌어 이제는 개발할 방법이 생겼다. 그 사업을 위해 국내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민간자본을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중이다. 이른바 민관협력(PPP Public-Private Partnreship) 방법인데, 아르헨티나에 있는 그 농장을 축산산업쪽으로 개발하고, 그 개발에 민간자본에게 연 5%의 수익을 보장하면 많은 자본이 투여될 것으로 기대된다. 농어촌공사는 이미 이 방식의 모델을 적용해 미얀마, 필리핀 등의 신규 농업개발사업을 발굴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에너지, 수문, 농기계 등 농업 관련 10개 민간기업과 해외 협력사업의 공동 추진을 위한 협약도 체결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새마을운동을 해외에 진출시킬 때 그 나라의 산업을 개발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그 방향에 정부나 공기업 뿐 아니라 민간자본을 끌어들임으로써 경제성장기여, 실업난 해소, 민간자본의 투자처 확대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있다고 본다. 이처럼 새마을운동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을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 한정시킬 필요도 없다. 선진국의 경우 덜 발달된 곳이나 방치된 지역 역시 새마을운동의 확산 지역으로 포함시키면 시장은 더 확대될 수 있다."

이상무 농어촌공사 사장은 
△1949년 경북 영천 △경북고 서울대 △행정고시 10회 △1971년 농림부 사무관 △농림부 농어촌개발국장 △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세계농정연구원 이사장 △농어업 농어촌 특별대책위원장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인터뷰 및 정리 = 박원식 부국장 겸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