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를 잊지 말아요’ 정우성의 여유
2016-01-07 15:47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천천히 느긋하게. 어떤 질문에도 조급하거나 섣부르게 답하는 법이 없다. 주변의 공기까지 여유롭게 느껴지는 그의 태도는 상대로 하여금 편안함과 신뢰감을 심어준다. 이는 그의 연기 방식과도 다르지 않다. 상대배우에게, 스태프에게, 감독에게 마치 ‘괜찮다’고 타이르는 것처럼. 시종 여유로운 그의 태도는 곧 작품의 중심이며 신뢰감인 셈이다.
1월 4일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개봉 전 아주경제와 만난 배우 정우성(42)은 결코 들뜨는 법 없이 차분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일관했다.
“배우로서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좋겠죠. 제작자로서는 신인 감독의 작품이고, 특성 있는 작품인 것도 그렇지만 스태프의 노력과 하늘 씨의 수고에 위로가 되었으면 해요.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명확한 바람도 있고요.”
‘나를 잊지 말아요’는 교통사고 후, 10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깨어난 석원(정우성 분)과 그 앞에 나타난 비밀스러운 여자 진영(김하늘 분), 지워진 기억보다 소중한 두 사람의 새로운 사랑을 그린 감성멜로다.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에서 배우와 스크립터로 인연을 맺은 정우성과 이윤정 감독은 ‘나를 잊지 말아요’를 통해 주연배우와 감독, 그리고 제작자와 감독으로 만나게 됐다.
“이윤정 감독은 연락을 잘하는 후배는 아니었어요(웃음).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고, 단편을 찍었다고 해서 작품과 시나리오를 보게 됐죠. 단편 아이템과 톤앤매너가 좋더라고요. 주인공인 ‘w’는 저를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써서 그런 건지 팬심도 보이더라고요.”
정우성은 “원작을 훼손시키지 않고 작품의 감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중, 직접 제작사 W를 차리고 제작자로 첫 발걸음을 뗐다. 영화인으로서, 선배로서 그는 “후배들의 꿈을 지켜주고 실현해주고 싶었다”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는 선배로서 제작자로서 ‘나를 잊지 말아요’에 대한 남다른 태도를 유지했다. “모자란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했고, 스태프들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솔선수범하고자 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조금 엄격히 하려고 노력했어요. 강압적인 게 아닌 솔선수범으로요. 후배들은 그게 더 불편할 수도 있었겠지만요. 저는 현장에서 라인을 담당하기도 하고, 일반인을 통제하는 등 작은 일들을 맡았죠. 넉넉지 않은 영화라서 인력구성이 풍요롭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해야 했어요. 제겐 값진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주연배우이자 제작자, 현장의 맏형이었던 그는 상대 배우와 감독, 스태프들까지 일일이 챙기고 그들의 집중을 도우려 했다. “제작이 연기에 방해되는 경우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단호히 “없다”고 답한다.
“제작자라기보다는 선배로서 후배이자 동료인 그들을 끌고 가는 입장이었죠. 개봉하고 제작자 타이틀이 노출되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 정말 좋은 제작자였나?’ 하고요. 스스로 던지게 되더라고요.”
제작자로서 꼼꼼하게 살피고, 참여한 부분도 눈에 띄지만 역시 그에게는 배우로서의 집중이 더욱 빛났다. 여타 멜로와는 다른 톤을 가진 ‘나를 잊지 말아요’에 대해 “끝까지 유지해야 했던 부분과 연기에 주안점을 둔 것”을 물었다.
“공허함이었어요. 그 안에는 회피, 외면에 대한 부분도 필요했죠. 기억을 잃은 석원이지만 잠재의식에는 남아있을 테니까요. 꽉 채워져 있지만 텅 빈 듯한 공허함을 연기하려고 노력했죠.”
석원은 기억을 잃고 과거에 대한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지만, 배우의 입장에서는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연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까? 괜한 걱정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캐릭터에 대한 고충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저보다는 진영을 연기한 하늘이가 더 힘들었을 거예요. 저는 그냥 모르는 척, 내면에 깊이 감춰놓은 기억에 아픔이 배어나면 되는데 진영은 또 한 번 석원을 속여야 하죠. 배우도 그렇지만 진영의 캐릭터가 아프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진영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그리고 상대 여배우에 대한 정우성의 애정은 너무도 따듯하고 녹녹했다. 그는 “4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하게 된 김하늘이 ‘나를 잊지 말아요’에 참여해줘서 고마움이 크다”면서 “그녀가 진영이라는 캐릭터를 꽤 잘 해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여배우가 주연인 영화가 없어요. 그런 부분에서 더 많은 관객이 이번 영화를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하늘이가 더 보람이 있을 것 같아요.”
여전히 ‘멜로의 상징’인 그. “40대에도 멜로 영화의 주인공을 맡을 수 있는 비결”을 묻자 그는 “멜로하기 좋은 나이”라고 말한다.
“사실 멜로라는 장르가 가장 어려워요. 연기도 그렇고요. 그래도 저는 40대에 그릴 수 있는 사랑의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해요. 멜로하기 좋은 나이는 40대가 아닌가 싶어요. 40대에는 사랑에 대해서 약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로맨틱코미디가 굉장히 여유 있고 위트 있어야 하니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장르거든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폭넓고 깊이 있게 표현해야 하죠. 그런 면에서 이제 로맨틱코미디를 하면 잘할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