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특별인터뷰] 박병원 경총회장 "노동개혁, 이제 1보 전진…획일적 잣대 버려야"
2015-11-17 17:01
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존재하는 것은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시키는 것은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회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개혁'은 그래서 반대에 부딪친다.
찬반 대립이 치열한 '노동개혁'도 그 기로에 서 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뗐을 뿐"이라고 말한다. 박 회장은 지난 9월 노사정위원회에 사(使)측 대표로 참여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노동개혁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던 그는 종종 한숨을 내쉬었다.
- 지난 9월 15일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냈는데, 여기에 대한 불만도 높다.
"어떤 노동개혁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사용자가 근로자한테 주는 임금의 총액과 고용의 총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면, 그것은 개혁이 되지 않는다. 사용자 입장을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노동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그런 얘길 나는 여러 차례 했다. 경총에 회비를 내는 기업들 입장에선 반발이 있을 수 있었는데도 굉장히 작심하고 한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아무도 안 써주더라(웃음)."
- 경총이 노동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고 하는 것은 선뜻 믿기 힘들다.
"노동개혁을 왜 하느냐.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노동 관련 제도 및 법률, 관행이 모두 노동자에게 반드시 유리하고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현재 주간기준 근로시간은 40시간이고, 연장근로는 주당 12시간씩 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상 초과근로 시 50%의 임금할증을 적용해야 하고, 휴일 근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실제 현장은 어떻게 돌아가나. 시간당 100원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정상근로 40시간을 열심히 일하면 4000원을 받는 데 비해 초과근로는 12시간만 일하고 1800원을 받는다. 어떻게든 초과근로를 하도록 만들어놓았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임금단체협상 할 때 노동자들이 왜 '잔업시간 보장'을 요구하겠나.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장 근로시간을 자랑한다는데, 어찌보면 근로자에게 비굴한 행동을 강요하도록 한 게 현행법이다. 현 시점에서 이게 과연 근로자를 위한 것인가."
- 노사정 대타협에서 휴일 근무를 평일 연장근로에 포함하기로 한 것이 그 때문인가.
"사실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 할증률 이런 것들은 노사간 합의로 정하고 법에서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 몇 시간이 걸리든 생산량에 따라서 임금을 주면 그게 근로자에게 해로운 일인가?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자기 회사가 처한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다 봉쇄해놓은 것이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이냔 말이다. 그래서 현행법과 제도 하에서 사용자는 결국 기본급을 안 올려주고 별도 수당이니 상여금이니 하는 것들만 자꾸 늘려주고 있다. 기본급을 올려주고 초과근무를 줄여주면 좋은데,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그게 안 된다. 어느 시간에 일을 하든 같은 액수의 임금을 주면 초과근무를 해야 할 필요성이 많이 줄지 않나. 에휴(한숨)."
- 휴일근로 수당에 대한 중복할증 여부를 두고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에 대한 관심도 뜨거운데.
"중복할증 판결은 노동자들에게 대재앙이나 마찬가지다. 고등법원 판결 결과(통상임금의 200% 지급)는 뒤집어보면 일주일에 휴일근무가 따로 없다는 말과 같다. 초과근무는 12시간만 하라는 규정이 주중에만 적용되는데, 주말근무까지 여기에 포함된다고 판단해버렸다. 주중과 주말을 합쳐 그전까진 초과근무를 28시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12시간밖에 못하게 된 거다. 수당을 더 주는 휴일에 몰아서 근무한다 해도 받는 임금은 그 전보다 줄어든다. 사용자는 그럼 유리하냐. 사용자로선 60시간의 근무를 52시간밖에 못 시키면서 시간 내 생산량을 맞추기가 힘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고정할증률을 명시한 근로기준법과 중복할증을 허용한 재판결과, 이런 것들이 노동자에게서 '저녁이 있는 삶'을 앗아간 것이다."
- 그렇다고 이 문제를 법적으로 풀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생각 자체가 문제다. 사정이 다 다른데 한 가지로 정해주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노동법제라는 게 근로자들을 도와준답시고 획일적인 규정을 가지고 있는데, 근로자들을 위한 것 같지만 아니다. 예를 들어 정년을 60세로 한 것이 그렇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관리를 잘 해서 급여를 더 올려도 모자랄 판인데 60세라고 무조건 나가라는 것이 과연 근로자를 위한 길인가? 능력이 떨어지거나 게으른 근로자들을 위한 제도일 뿐이다."
- 노사정 대타협에서 성과형 임금체계를 추진하기로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인가?
"모두에게 같은 급여를 주는 것은 실적이나 능력 떨어지는 노동자를 위해서, 실적이 높고 부지런히 일하고 능력 좋은 근로자들을 희생시키는 거다. 사용자 입장에서야 주는 돈이 똑같으니 걸리는 이해관계가 없다. 사용자와 투쟁해서 쟁취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일부가 희생한 결과란 얘기다. 지금은 청년들의 취업이 안 되고 있는데, 초임의 3배 정도 받는 57~58세들이 정년 60세라는 테두리 안에서 2~3년간 버틴다. 젊은이들에 대한 채용여력이 생기겠나. 임금피크제란 것은 젊은이들의 취업에만 관련된 제도가 아니다. 일의 총량을 두고, 근무량이 적은 사람들에겐 임금을 적게 주고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겐 많이 주자는 것이 임금체계 개편의 핵심이다. 하루아침에 못 바꾸니 점진적으로 바꿔나가자는 것이다."
- 그럼 임금피크제가 지금으로선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나.
"임금체계 개편을 임금피크제로 보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시각이다. 임금피크제는 '또 다른' 경직적인 제도다. 왜 모두가 똑같이 58세가 되면 50%의 임금이 깎여야 하나. 30대라고 해도 다치거나 병에 걸려 회사에 대한 기여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면, 그래도 그전과 같은 임금을 주는 게 옳나. 사실 그건 사회보장 측면에서 사회가 해결해줘야 하는 것이지 임금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임금을 다 똑같이 받는 게 공정하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는 사회의 활력을 최소화(minimize)하는 시스템이다.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대통령은 "능력과 성과에 따라 일자리와 임금 결정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게 노동시장 개혁의 본질이다. 이런 게 유연(flexible)하게 결정되는 세상을 만들면 정년제도는 없애도 된다."
- 지금 일반해고 지침 도입을 두고 노동계에선 '쉬운 해고'를 가속화하는 법안이라는 비판이 많다.
"해고의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만들어 주는데 어째서 해고가 더 쉬워지나.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중립적인 거다. 회사에 기여한만큼 월급을 준다고 하면 그만큼 일을 하려고 하니, 사용자로선 해고할 마음도 사라진다. 호봉제란 임금 체계는 무조건 햇수마다 급여가 오르는데, 사용자 입장에선 이게 달갑지 않다. 그런데 마음대로 자를 수 없으니 명예퇴직을 택하는 거다. 그런 방법의 최대 단점은 획일성이다. 52년생 이상은 다 나가라 하면, 회사입장에서는 능력이 있는 사람까지 다 내보내야 한다. 임금피크제도 똑같다. 이건 임금체계 '개선'이 아니다. '개악'은 아니지만 100보 가야하는데 이제 겨우 1보 간 것밖에 안 된다. 평균에 맞춰서 제도를 만들다 보면 유능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손해고,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에겐 이익이 된다. 중국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우리 경제사회가 이런 제도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 성과 측정은 다소 주관적인데 과연 이를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성과측정은 사용자가 하는만큼 편파적일 수도 있고 불공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선 다른 나라는 하는데 우리는 못한다는 패배주의부터 벗어야 한다. 안해보고 무조건 공정한 평가는 할 수 없다는 전제를 깔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객관적으로 할 수 있게끔 능력을 키워가는 게 필요하다. 점진적으로 바꾸면 될 일이다. 성과평가가 자리잡을 때까지 10년이 걸린다고 하면 일단 지금은 성과 평가 반영도를 1%만 하자, 이런 식으로 해도 된다. 개인의 선택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 가자는 거다."
- 사용자 입장에서 다 이런 인식을 갖고 있지는 않을텐데.
"이제부터 사용자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그간 경총에서 해왔던 얘기들을 보면 알겠지만 사용자들은 최저임금을 올릴 수 없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안 된다 이런 얘기들만 해 왔다. 제도를 바꾸면 불리하게 될 것이란 위기감을 사용자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도 이제는 고민을 해야 한다. 일의 총량과 임금을 건드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대로 사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앞으로 바꿔나가는 게 좋을지. 앞으로 할 일이 첩첩산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