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다…'천 개의 플라토 공항'

2015-10-02 11:10
플라토 미술관 '엘름그린&드라그셋' 첫 한국 개인전

아주경제 조가연 기자 =짐을 옮기는 카트, 비행기 출발시각을 알리는 전광판, 탑승 게이트와 면세점까지…. 삼성미술관 플라토가 공항으로 다시 태어났다.

플라토 미술관 기획전 '천 개의 플라토 공항'은 유리와 철로 이뤄져 공항과 유사해 보이는 미술관의 외관을 잘 반영했다. 전시명은 미술관 명칭의 근거가 된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저서 '천 개의 고원(플라토): 자본주의와 분열증'에서 따왔다.
 

마이클 엘름그린(좌)과 잉가 드라그셋(우)이 '뒤집힌 바' 앞에 섰다. [사진=플라토 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는 북유럽 출신의 현대미술가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지난 1995년부터 함께 작업해온 마이클 엘름그린과 잉가 드라그셋은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하고 2012년 런던 트래펄가 광장의 공공 조형물을 설치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원래 시인과 연극연출가였던 이들은 제도적 미술교육의 '아웃사이더'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만들고 있다.

'천 개의 플라토 공항'에서 엘름그린&드라그셋은 자신들이 대면한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하는 한편 관객들이 사회적 권위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익숙하고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익명성, 유목성, 소비성이 강한 공항의 이면을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제의 역설을 지적한다.

비행기의 출발시각을 알리는 전광판을 살펴보면 홍콩이나 드레스덴과 같은 익숙한 지명들 사이에 고대 도시 '카르타고(KARTHAGO)', 황금의 땅 '엘도라도(EL DORADO)', 심리학자 '라캉(LACAN)'의 이름이 보인다. 실재하는 지명에 이러한 허구의 요소를 더함으로써 '현실 같은 가상', '현실과 가상의 교차'를 그려냈다.
 

'이 자리는 당신 것일 수 없다 (THIS SPACE CAN'T BE YOURS)' [사진=플라토 미술관 제공]


보안검색대를 지나면 'THIS SPACE CAN'T BE YOURS(이 자리는 당신 것일 수 없다)'란 문구가 적힌 광고판을 만난다.

진짜 공항이라면 광고주들을 향해 'THIS SPACE CAN BE YOURS(이 자리는 당신 것이 될 수 있다)'라고 해야겠지만 이를 통해 공간의 역설과 모순,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했다. 원형 카운터 안에 의자가 놓이고 음료 꼭지는 바깥으로 향한 '뒤집힌 바'도 같은 맥락의 작품이다.
 

'탑승구 23 (GATE 23)' [사진=플라토 미술관 제공]


'탑승구 23(GATE 23)'으로 향하는 계단은 중간이 무너져내렸다. 작가는 이 무너진 계단을 통해 계층간 유동성이 불가능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탑승구 23'은 '개천에서 용 날 수 없는' 현대사회의 좌절감을 반영했다.

첫 번째 전시장을 돌아나가면 좁은 복도를 한쪽을 채운 '무력한 구조물' 연작이 보인다. 연달아 설치된 네 개의 문은 문틀 밖에 손잡이가 달렸거나 두 개의 문에 하나의 잠금장치가 연결되고 문틀 안에 또 다른 문이 존재하는 모습이다.

작가는 문이 '통로' 또는 '출입구'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하면서 아주 사소한 변화로도 기존의 제도 질서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쇠사슬과 자물쇠로 꼭 잠긴 일등석 라운지와 그 안의 '화이트 메이드', 벨트 위를 끊임없이 돌고 있는 '미수취 수화물', 휠체어에 파란 풍선을 매달아 노인복지 문제를 떠오르게 하는 '생일'은 전시장 전반을 지배하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가장 강하게 전달하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모든 것이 정상인 듯' 포장해 관객들을 기만하는 이번 전시가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세계와 다름없다고 지적하며 기존 제도의 모순들을 비판했다. '천 개의 플라토 공항'은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는 '공항'이란 공간과 30여 점의 작품을 통해 자유와 통제, 보호와 소외,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경험할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는 오는 18일까지다. 1577-7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