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중국 지도자 방미 36년, 덩샤오핑에서 시진핑까지

2015-09-21 15:14

1979년 미국을 방문했던 덩샤오핑[사진=바이두]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2일 미국을 국빈방문한다. 25일에는 오바마 대통령과의 미중정상회담 일정이 잡혀있다. 그 뒤 26일에서 28일까지는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한다. 시 주석의 이번 방중은 그의 국가주석 취임 이후 첫 미국 국빈방문이며, UN 총회 참석이다. 그 동안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 중국 국가 지도자들이 미국을 방문해 미중 정상회담을 진행했던 발자취를 통해 미중 관계의 변화상을 읽어본다.

◆덩샤오핑 미중관계를 활짝 열다

덩샤오핑이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74년이었다. 평생 미국을 가본적이 없는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는 그해 4월 UN 제6차 특별회의에 중국측 대표로 덩샤오핑을 파견한다.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 광풍에 주자파로 몰려 하방당했다가 1973년 12월에 막 복권됐었다. UN 대표단을 이끌고 미국에 간 덩샤오핑은 당시 정치국위원 신분이었다. 당시 덩샤오핑을 주목하는 나라는 몇 없었다.

덩샤오핑은 UN 특별회의에서 “중국은 제3세계국가 측에 서있으며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당시 UN 사무총장 발트하임은 덩샤오핑이 중국을 여러 국제단체에 가입하도록 안내했다고 평가했다.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이후 1978년 10월에 개최된 11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1기3중전회)에서 덩샤오핑은 중국의 권력을 장악했다. 그 이듬해인 1979년 1월1일 미중 양국이 정식으로 수교했다. 수교와 동시에 덩샤오핑이 1월28일 미국을 공식 방문했다. 신중국 성립이후 중국 국가지도자의 첫 미국 방문이었으며, 미중관계를 활짝 열어젖히는 의미를 띄었다.

당시 덩샤오핑의 직책은 중공중앙 부주석, 국무원 부총리,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해방군 총참모장 등이었다. 미국은 국가원수의 예로 덩샤오핑을 맞았다. 덩샤오핑은 9일의 미국 방문 기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과 5번의 회담을 가진 것을 비롯해 모두 80차례의 회담이나 회견을 했다. 그는 20차례에 걸쳐 미국 측 인사들을 초청하거나 자신이 초대받은 자리에 참석했으며 8차례의 기자회견을 갖고 전 세계에 중국의 개혁개방을 알렸다.

덩샤오핑의 미국방문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997년 2월 사망하자 UN은 조기를 게양했다. UN이 조기를 게양한 것은 덩샤오핑 사망 이외에 저우언라이, 주더(朱德), 마오쩌둥, 쑹칭링(宋慶齡) 등이 있다.

◆화교만찬서 경극 불렀던 장쩌민

1997년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장쩌민 전 주석 [사진=바이두]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1993년 11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시애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양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1989년 톈안먼사태 이후 소원해진 양국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장쩌민 주석은 1995년에는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뉴욕에서 열린 유엔 창립 50주년 특별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함께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가자’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어떤 대국은 늘 자유, 민주, 인권이라는 명목으로 타국의 주권을 침범하고, 핑계를 만들어 타국의 내정에 간섭한다”며 미국을 겨냥했다.

장쩌민은 그 후 1997년 10월 미국을 국빈 방문해 9일 동안 7개 도시를 둘러봤으며 캘리포니아의 화교들이 베푼 환영식에서는 '밝은 달빛이 창가에 비치네'라는 중국 전통극인 경극의 한 대목을 불러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2002년 미국을 방문해 부시 대통령을 만난 장쩌민 전 주석[사진=바이두]


장 전 주석은 2002년 10월 방미 때는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텍사스의 크로포드 개인 목장 연회에 참석, 중국 농구스타 야오밍(姚明)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는 등 사적인 대화를 즐기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직접 카트를 운전했고, 농장을 함께 둘러보았다. 방미 중 양국은 제3차 반테러협상을 진행하고 무역안전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후진타오 “양국관계는 글로벌 파급력 지녀”

2011년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진타오 전 주석[사진=바이두]


후진타오는 2006년 4월 18일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타이완 문제, 미중 무역 마찰 등을 논의했고, 군사, 사법, 과학, 교육, 문화 등 영역에서 교류 합작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후진타오는 당시 “중미 관계는 이미 양국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서 “양국은 광범위한 공동 전략적 이익을 지니고 있으며, 이번 방미에서 건설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미중 양국간 무역마찰이 첨예하던 2011년 후진타오는 다시 미국을 방문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를 ‘미중수교 40주년과 21세기 두번째 10년이 시작되는 시기의 방문’이라고 의미를 띄웠었다. 그해 1월 18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 국빈방문에서 후진타오는 워싱톤, 시카고에서 약 20차례의 모임에 참석했으며,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관례를 깨고 백악관에서 개인 연회를 진행했으며, 바이든 부통령이 직접 공항에 영접나갔다. 당시 양국은 ‘미중연합성명’을 발표해 서로 윈윈하는 파트너관계임을 선포했다.

◆시진핑 “태평양은 두 대국 충분히 수용”

시진핑 주석은 2013년 6월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신형대국관계'를 제안했다. 신형대국관계란 충돌하지 말고, 상호이익을 존중하며, 공영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본질적으로는 미국에 대해 중국의 '아시아 주도권'을 인정하라는 목소리도 담겼다는 평가다. 시 주석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캘리포니아 랜초미라지 회동에서 신형 대국 관계 형성의 필요성을 힘줘 말하면서 미국 측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했다. 시 주석은 이날 "드넓은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개의 대국을 수용할 충분한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은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담에서 다시 만났다. 두 정상은 중국의 전·현직 최고 지도자들이 기거하는 곳인 중난하이(中南海) 내에 있는 작은 섬인 '잉타이(瀛台)'와 그 안에 설치된 전각인 함원전(涵元殿) 등 고풍스러운 교각과 누각을 산책하며 양국 관계에 대한 고민을 주고받았다. 시 주석은 "우리는 이미 국가상황에 부합하는 발전의 길을 찾았고, 그것은 바로 중국 특색사회주의의 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