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로 만들 수 없어 더 아쉬운 우리 '만화' 세편은?

2015-09-21 06:50

[사진=만화 '용비불패','오디션', '레드문']

아주경제 서동욱 기자 = 케이블 채널 tvN이 웹툰 ‘치즈 인 더 트랩’(작가 순끼)을 TV드라마화 하기로 결정하고 캐스팅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송곳(작가 최규석)도 10월 JTBC에서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다. 웹툰의 TV드라마화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미생’(극본 정윤정·연출 김원석)의 성공 이후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웹툰은 드라마로 나와도 충분히 해볼만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까닥이다.

하지만 웹툰 뿐만 아니라 과거 단행본으로 나왔던 우리 만화 중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스토리를 가진 작품들이 많다. 기술과 자본의 한계로 구현될 수 없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기술이 발전하고 자본이 늘어날 미래에는 드라마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그때까지 이 만화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너무 재미있어 포기할 수 없는 우리 만화를 소개한다.

1. 용비불패(작가 문정후, 1996)
국산 무협 만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작품은 세 개다. 천랑열전(작가 박성우), 열혈강호(작가 전극진·양재현) 그리고 바로 지금 소개할 용비불패다. 용비불패는 어두운 과거를 가진 수수께끼의 현상금 사냥꾼 '용비'가 무림을 둘러싼 음모에 연루돼 강호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을 차례로 격파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만화다. 작화능력, 좋은 스토리,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수작 중의 수작이다.

만화는 초반엔 유쾌하게 모험을 떠나면서 시작되지만 스토리가 절정을 향하게 되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용비의 미스터리한 과거가 촘촘히 끼어들어 궁금증을 유발하고 틈틈이 유머러스한 에피소드가 분위기를 환기한다. 유머, 미스터리, 액션이 모두 살아 움직이는 TV 드라마에 매우 적합한 스토리 라인을 가졌다.

또 캐릭터 하나하나의 특징과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문정후 작가의 스타일은 마치 일본의 전설적인 만화 슬램덩크(작가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만화 속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선과 악을 가리지 않고 고유의 특성을 지니며, 그들이 사용하는 개성 있는 무술들은 눈을 사로잡는다. 극화 했을 경우 매회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문제는 구현이다. 용비불패 전체를 감싸고 있는 미스터리한 느낌은 만화가 묘사하는 거대한 자연의 역할이 크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배경이다. 또 용비를 비롯해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사용하는 무술은 지나치게 스케일이 크고 화려해서 구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장풍 한방으로 산을 날리고 강줄기를 바꿔야 한다.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흥미롭지만 영상으로 표현하려면 온통 부자연스러운 CG범벅이 될게 분명하다.

2. 오디션(작가 천계영, 1997)
한 때 국민 만화였던 ‘오디션’이다. 오디션은 천계영이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윙크에 연재한 작품으로 음악 소재의 만화다, 2008년에는 극장 판 애니메이션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만화는 한 대형 기획사 회장이 자신이 여행하면서 발견한 천재 아이 네 명을 모아 토너먼트 오디션에 우승시켜야만 유산을 주겠다는 유언을 하면서 시작된다.

회장의 딸은 아버지의 일기장을 유일한 단서로 이 천재 아이들을 찾는데 성공하고, 음악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이 네 명의 천재에게 재활용 밴드라 이름 붙인다. 오디션은 소재 자체가 창의적이다. 음악을 다룬 성장 드라마는 많지만 대중음악을 하는 천재들을 찾고 또 개발하는 과정을 이렇게 독특하게 그린 스토리는 없었다. ‘절대음감의 소유자’ 베이스 장달봉, ‘엄청난 성량과 고운 목소리를 가진’ 보컬 황보래용, ‘완벽한 리듬감의 소유자’ 드러머 류미끼, ‘음악중독자이자 빠른 손을 가진’ 기타리스트 국철로 구성된 ‘재활용 밴드’의 매력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다.

캐릭터 표현이나 스토리 전개는 어려울 게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드라마 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바로 소리 때문이다. 이들이 표현하는 상상에 가까운 음악들은 표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황보래용의 ‘엄청난 성량과 고운 목소리’는 만화적 표현 일뿐 현실에 구현했을 때 시청자를 감탄 시킬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무리하게 기계음으로 대체한다면 오히려 더 유치해진다. 더 좋은 기술이 나오기 전에는 사실상 구현이 불가능하다.

3. 레드문
국내 만화 중에서도 보기 드문 장르인 SF액션판타지물 ‘레드문‘이다. 이 만화는 놀랍게도 순정만화계의 거장 황미나 작가의 작품이다. 때문에 작화 자체에는 순정만화의 느낌이 남아있지만 ’SF액션판타지‘라는 장르 자체에 크게 괴리감이 들진 않는다. 평범한 고등학생 윤태영이 외계인인과 로봇들로부터 공격받으며 자신이 ’시그너스‘라는 별에서 피신한 예언의 구원자 ‘태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을 위협하는 적들이 가족을 납치하고 친구들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결국 태영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시그너스’로 떠난다.

레드문의 장점은 대부분의 만화와는 다르게 뒤로 갈수록 스토리가 더 촘촘해 진다는 것이다. 처음에 뿌려놓은 복선들을 하나하나 잘 수습하는 작가의 구성력은 놀랍다. 또 ‘외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멋들어지는 설정들은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초능력과 같은 판타지적인 요소를 스토리상에 절묘하게 배치해 유치하지 않게 만들어 놨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인물들의 감정선이다. 캐릭터들이 상황에 따라 느끼고 표현하는 그 독특한 감정들은 여류 작가이기 때문에 표현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SF는 사실상 드라마로 만들기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스토리상 인물들은 우주선을 타고 외계로 간다. 외계별에는 첨단 과학이 발달해 레이저 건이 등장하고 비행능력을 갖춘 로봇이 사람인척하며 나타난다. 초능력이 난무한다. 주인공은 그 엄청난 능력으로 바다를 들어 올리고 손에서 불을 뿜어 낸다. 순간이동을 하고 사람을 치료한다. 심지어 극중 외계에 사는 사람들은 생김새가 지구인과 미묘하게 다르다. 표현할 방도가 없다.

겨우 세 편을 소개했을 뿐이지만 아직 우리 만화들 중에는 드라마화 되지 못한 무수히 많은 좋은 이야기들이 있다. 기술과 자본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을 뿐이다. 결국 지금까지의 기술과 자본력이 우리의 상상력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아직 기술과 자본은 더 늘어날 여지가 있고 또 우리가 볼 수 있을 드라마도 아직 무궁무진하다. 기술을 발전을 기다릴지 혹은 다른 방식으로 만화의 스토리를 활용할지는 드라마 제작자들의 선택이고 역량의 문제다. 제작자와 방송사들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아직 영상으로 구현하지 못한 기존의 만화와 웹툰을 활용하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