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도’ 유아인 “훌륭한 소년이 되려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2015-09-10 12:00
‘깡철이’에서는 “세상 단디 살자”라고 말하는 강철이를, ‘베테랑’에서는 안하무인의 종결자 재벌 3세 조태오로 분한 유아인. 그런 그가 이번엔 ‘왕자’(王子)를 연기했다. 조선시대 실제로 일어난 비극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모티브로 한 영화 ‘사도’(감독 이준익·제작 타이거픽쳐스)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유아인을 9일 오후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도’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송강호)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유아인),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아낸 영화다.
신드롬을 일으킨 JTBC ‘밀회’를 끝내고 곧바로 ‘베테랑’에 캐스팅되더니 크랭크업 후 바로 ‘사도’에 돌입한 유아인은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태종 이방원으로 분하며 영화 ‘해피 페이스북’까지 촬영하고 있다. 말 그대로 유아인 전성시대다.
“수면 아래 깊이 있는 캐릭터를 끌어 올리려면 시간이 걸리긴 하죠. 캐릭터를 해석하는 것도 좀 더 창조적이어야 하는데 저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 같아요. 자꾸 제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살을 붙이는 과정들을 반복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조태오도 마찬가지죠. 관객들 중에 ‘유아인 실제 성격이 조태오 아니야?’라고 하시는 분도 계신데, 제 말투 안에서 찾은 게 사실이죠. ‘악역이니까 말투를 이렇게 해야지’라기 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가 있는 것 같아요. 캐릭터를 분석할 때도 제 안에 있는 성분들을 재조합하는 것 같아요.”
유아인은 “앞선 작품들과 ‘사도’에서의 가정은 간극이 꽤 커 보이지만 장르적인 특성이 크게 보이게 만드는 것 같다. 사도와 이전 캐릭터들이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장르적 특성 때문에 궤를 같이 하는 인물들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설정, 장르적 특성이 강하다보니 물 흐르듯, 흐르는 인물이 아닌 폭풍이 치는 캐릭터로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베테랑’에서는 재벌 3세였다면 이번에는 진짜 왕자인 것이죠. 신분이 다르기 때문에 하는 고민이나 번민도 훨씬 깊숙이 들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재벌 3세는 우리 일반사람들이 스스로 그들을 ‘왕자님’ ‘공주님’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이번에는 나랑 전혀 다른 인간과 저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죠.”
‘사도’ 출연을 결정하면서 걱정한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아인은 “1차로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해야하는데 영조와 사도의 갈등이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보이면 어쩌나 했다”면서 “왕과 왕자의 감정선과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는데 요즘 부모 자식간의 갈등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자식이 왕이 돼 주지는 않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기도 힘들겠지만 이미 우리 주변에는 학원을 다니는 많은 ‘왕자님’ ‘공주님’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선을 생각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저는 10대와 20대의 편”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유아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부모의 가치관에 대해 설명했다.
“‘사도’를 보신 부모님들은 ‘애들을 어떻게 키워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것보다 ‘내 아들은, 내 딸은 누구지?’ ‘이 인간은 뭐지?’라고 먼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런 시선의 부재로 부모와 자식간에 갈등이 시작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부모가 될 자신이 참 없는데(웃음) 누나가 조카를 낳고 난 후에 ‘유난떨지 말고 좋은 노래나 들려줘’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아이의 정신건강을 위한 것이죠. 남들과 똑같은 걸 시켜서 똑같은 일을 하게 하는 게 무슨 특별함이 있겠어요. 건강하고 사회인으로서 건강하고 경쟁력이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주라고요. 남들하고 경쟁해서 1등하는 것도 경쟁이지만 전부 전국 1등을 못하니까요. 실제 경험에서 나오는 얘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학교도 일찍 그만뒀고, 저희 부모님도 그렇게 키우시지 않았거든요. 공부를 많이 시키시지는 않았지만 제가 필요로 할 때는 많은 서포트를 해주셨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마어마한 게 보였어요. 죽음 앞에서 내가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는데, 잠깐 스쳐가야할 주마등이 8일간 계속됐다는 거잖아요. 그 인간이 가졌던 생각과 죽음을 앞두고 보인 어마어마한 지점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연기를 했어요. 참 많은 게 보였겠죠?”
유아인은 사도의 마음도, 영조의 마음도 이해하고 있었다. 유아인은 “인간은 결코 끊어낼 수 없는 무언가에 마음을 내어주는 것 같다”며 “죽어도 아버지고, 죽어도 아들이지 않느냐. 결코 끊어낼 수 없는 천륜과 혈연 안에서 결국에는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뒤주 안에서의 죽음이 아름답지는 않았겠지만 천륜은 결코 끊어낼 수 없기 때문에 사도가 스스로 뒤주 안에 들어간 것이라고 본다”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유아인은 스크린 데뷔작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엔딩에서 “훌륭한 소년이 될거에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사도’에서 사도세자가 어린 정조(소지섭), 즉 이산(아역 이효제)에게 허공으로 활시위를 당기며 “어떠냐. 자유롭지 않느냐”라고 묻는다.
언제나 소년, 언제까지나 꿈꾸는 훌륭한 소년인 유아인. 언제나 도전적인 연기를 하고 싶다는 유아인의 원동력을 엿본 인터뷰였다.
*유아인은 지난 2004년 1월 KBS2 성장드라마 ‘반올림’에서 주인공 옥림(고아라)의 남자친구 역으로 데뷔했다. 소년의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2007년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좋지 아니한가’, 2008년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2009년 ‘하늘과 바다’ 등의 작품을 통해 착실하게 ‘소년다운’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그런 그가 ‘청춘의 정점’을 찍은 것은 2011년 ‘완득이’를 통해서다. 그는 가진 것도, 꿈도, 희망도 없는 고교생 완득이 역을 맡아 선배 김윤석에게 밀리지 않는 연기력으로 관객들에게 호평을 얻었다. ‘완득이’는 관객수 531만 명을 돌파했고 유아인을 ‘핫한’ 20대 남배우 대열에 올리는 것에 성공했다.
소년으로 데뷔한 유아인은 점차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SBS 드라마 ‘패션왕’ 강영걸로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인물을,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강직하지만 로맨틱한 왕 이순을 연기하며 소년의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JTBC 드라마 ‘밀회’의 피아니스트 지망생 이선재 역을 통해 김희애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연기하며 연기력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 거기에 영화 ‘베테랑’에서는 안하무인 유아독존 재벌 3세 조태오 역을 맡아 1,000만 배우 타이틀까지 얻어냈다.
끊임없이 변주하고 있는 유아인의 변신은 9월 영화 ‘사도’(감독 이준익)에서도 이어질 전망. 그는 사도세자 역을 맡아 영조 송강호와 호흡을 맞췄으며 10월 5일 첫 방송을 앞둔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조선 3대 왕 이방원 역을 맡아 ‘소년’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