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 중국인들은 왜 동북3성을 떠나는가

2015-08-10 11:36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랴오닝(遼寧)성, 지린(吉林)성, 헤이룽장(黑龍江)성으로 이뤄진 동북3성. 이 곳은 석탄, 석유, 석회석 등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과거 만주국 시절 일본이 건설해 놓은 중공업 공장들은 신중국 성립 이후 한동안 중국경제를 떠받쳤다. 동북3성 경제의 중심은 화력발전소와 유전, 시멘트공장, 철강공장, 탄광 등이었다.

개혁개방이후 중국은 연해지역에 경공업 제조기지들이 들어서며 발전을 거듭했다. 경공업의 발전은 지역내 중공업의 발전을 이끌었다. 각지에 새로 들어선 중공업 공장들의 경쟁력은 동북3성의 산업기반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중공업기반이 튼튼했던 동북3성은 훌륭한 제조기지가 될 수 있었지만, 북으로는 러시아와 몽골, 남으로는 북한에 가로막혀 투자 매력도가 떨어졌다. 외자유치가 부진해 경제발전이 지지부진했고, 동북3성 산업기지들은 경쟁력이 약화돼갔다. 1990년대 후반 '철혈재상' 주룽지(朱鎔基) 총리는 동북3성의 국유기업들을 대거 구조조정했다. 당시 750만명의 직원들이 실직했다.

[관련기사]연변을 찾았던 중국의 총서기들

◆1990년대 후반의 엑소더스

실직은 경제, 사회, 가정에 고통을 낳는다. 동북3성의 중국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거 외지로 나선다. 조선족들은 한국으로 대거 몰려갔으며, 한족들은 유럽과 미국으로 향했다. 한국에는 값싼 노동력을 원하는 일자리가 풍부했다. 언어가 통하는 동북3성 조선족들은 주저없이 한국행을 택했다.

미국과 유럽에는 과거 정착한 화교사회에서의 고용 수요가 풍부했다. 홍콩인을 비롯한 광둥(廣東)인들이 세계 각지에서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었으며, 개혁개방 직후 해외로 나간 원저우(溫州)상인의 수도 많았다. 부유층 2세들 유학생도 많았다. 화교사회에는 가사도우미, 배달원, 수리공 등 직업이 넘쳐났다.

생활고에 몰린 동북3성 인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갔다. 프랑스 통계국에 따르면 프랑스에 정착한 중국이민자 중 58%가 저장(浙江)성 출신이고 26%가 동북3성 출신이다. 저장성 출신은 1950년이후부터 꾸준히 유입된데 비해 동북3성은 2000년대 들어 급증했다.
 

동북지역 헤이룽장성의 다칭유전.



◆지독한 관료주의, 갈 곳 못찾은 투자

동북3성의 경제가 불안해지자 중국 중앙정부는 지역개발 진흥정책을 내놓았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고, 동북3성 지방정부들은 아낌없이 투자했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는 고속성장기였다. 이시기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성의 연평균성장률은 12.8%, 13.8%, 11.7%를 기록해 중국 전국의 평균성장률 10.7%를 훌쩍 뛰어넘었다.

중국 전역에 석탄, 철강, 시멘트, 건자재 등 업종에서 공급과잉이 출현하던 2012년부터 동북3성의 성장률은 고꾸라졌다. 중앙정부가 동북3성에 재정을 투입하던 10여년동안 동북3성은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석탄, 발전, 시멘트 등 과거 전통업종에 투자했다.

베이징에서 IT업체를 운영하는 지린성 출신 중국인 사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내 고향은 지린성 작은 농촌 마을이다. 지도자들은 장기적인 발전계획을 세울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재정보조와 정책혜택이 하달되어 오더라도 간부들은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사기를 당하거나 스스로 착복하다가 탈이 나고 만다. 도로건설용 자금이 수년째 내려오고 있지만 아직 간선도로는 지어지지 못하고 있다. 동북지역의 관료주의는 상상을 초월한다. 민간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다. 나 역시 고향에서 IT기업을 창업하고 싶었지만 관료주의 장벽에 포기하고 말았다."

◆현정부 들어 경제하락 가팔라져

경제 구조조정을 기치로 내건 리커창(李克强) 내각이 들어서면서 동북3성 경제성장률 하락은 더욱 가팔라졌다. 경제불안으로 인해 고용시장이 불안해졌다. 많은 동북3성 인민들이 외지로 떠나가고 있다. 게다가 동북3성의 인민들은 자녀들 교육에 투자해 외지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하고, 외지에서 직장을 잡기를 원한다.

다음은 랴오닝성 출신의 한 중국기자의 설명이다. 

"할아버지는 고향의 발전소에서 일했고, 아버지 역시 같은 발전소에서 일했다. 소형 화력발전소와 탄광은 동북3성 소도시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의 인생은 너무도 힘들고, 근무여건은 열악하다. 나는 랴오닝성 대학에 진학하려 했지만, 부모님은 나를 우한(武漢)대학에 진학케 했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랴오닝성의 매체에서 직장을 구하려 했지만, 외지 대학 출신은 아예 받아주질 않았다. 소도시 매체는 아예 채용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베이징의 매체에 취업했다. 최근에는 아버지가 다니는 발전소도 불안하기 그지없다. 환경규제에 걸려 발전을 하면 할수록 벌금을 내야한다. 설비 업그레이드 자금은 아직 하달되지도 않고 있다. 언제 발전소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도 고향에 돌아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랴오닝성 푸순의 한 철강공장.



◆'신동북현상'이라는 신조어

중국에는 ‘신(新)동북현상’이란 신조어가 있다. 신창타이(新常態, 뉴노멀)시대를 맞아 동북지역의 경제성장률 하락이 더욱 가팔라지고, 경제가 불안해지고 있는 현상을 뜻한다. 이 단어는 동북3성 인민들이 끊임없이 외지로 유출되고 있는 현상도 내포하고 있다. 

지난해 랴오닝성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8%에 그쳤다. 이는 당초 목표치인 9%에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헤이룽장성도 5.6%로, 목표치인 8.5% 안팎에 크게 못 미쳤다. 지린성도 6.5%에 머무르며 목표치인 8% 안팎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러한 동북3성의 2014년 GDP 성장률은 중국의 31개 성(省) 가운데 최하위 다섯 손가락에 포함됐다.

동북3성의 경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중국 최대 유전인 헤이룽장(黑龍江)성 다칭(大慶)유전은 올해 130만톤을 감산한다. 이로 인한 세수 감소액은 60억위안(약 1조500억)에 달할 전망이다. 헤이룽장성의 석탄 기업인 룽메이(龍煤)도 지난해 50억위안(약 875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 회사의 직원은 24만명이나 된다.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의 올 1분기 성장률은 각각 1.9%, 5.8%, 4.8%로, 국가전체 성장률(7%)를 크게 밑돌았다. 헤이룽장성 사회주의학원 주푸언(祝福恩) 서기는 "과거 동북3성은 계획경제 비중이 높아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더뎠다"며 "계획경제에 익숙한 정부가 너무도 강한 권한을 쥐고 있어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