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그리스 사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자

2015-07-20 10:55

[국제경제부 권석림 차장]

"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 서리고, 어버이 한숨 짖는 새벽달 일세. 피눈물로 한 줄 한 줄 간양록을 적으니 님 그린 뜻 바다 되어 하늘에 닿을세라"

가수 조용필씨가 작곡한 노래 ‘간양록(看羊錄)’이다. 작사는 신봉승씨로 간양록에 실린 시를 바탕으로 썼다. 간양록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잡혀갔던 조선의 포로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인 강항(姜沆)이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체험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글이다. 일본 포로로 끌려가 온갖 수모 속에 고향을 생각하며 쓴 것으로 당시 일본의 정치·군사·문화·사회 등 광범위한 현상을 자세히 기록했다. 이를 통해 임진왜란기(1592~1598) 조선과 일본의 실상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임진왜란 수기(手記) 징비록(懲毖錄)도 있다. 징비록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집필한 임진왜란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제목인 '징비'는 시경(詩經) 소비편(小毖篇)의 "예기징이비역환(豫其懲而毖役患)", 즉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구절에서 따왔다. 징비록의 첫 장에서 유성룡은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저술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리스 사태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산고 끝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회의에서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을 지원키로 합의했지만 워낙 부채가 커 채무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그리스의 정부 부채는 3200억 유로, 우리 돈으로 397조 원에 이른다. 

그리스의 위기를 불러온 원인에는 그리스인들의 도에 넘는 과소비와 공공부문의 부패가 가장 크다는 지적이다.

그리스가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과도한 복지와 방만한 운영으로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유로존에 가입한 이후 임금이 2배 급증했고, 최저임금도 70%나 상승했다. 이를 두고 독일 일간 디벨트는 "유로존 가입 이후 그리스의 급격한 경제성장의 배경에는 급증한 부채가 있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리스는 이후 2010년 유로존 가입을 위해 재정통계 등을 조작했던 사실까지 드러났다.

디벨트는 "그리스의 위기는 빚을 내, 분에 넘치는 소비와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라며 "그리스의 부채비율 급등은 자기 형편을 훨씬 넘어선 생활을 누린 국가의 자화상"이라고 꼬집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유로존 정상들과 860억 유로(약 107조원)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받는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강도 높은 구제금융 합의안으로 자국 내에선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급기야 '사임'까지 오르내리고 있다. 그리스는 재정주권을 박탈당한 채 '경제 신탁통치'를 당하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처지다. 그토록 바라던 빚 탕감도 없다. 1997년 외환위기에 봉착한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사항을 고분고분 받아들여 도장 찍고 긴축과 구조조정의 가혹한 터널에 들어설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채권단과의 신뢰 구축 전략에 따라 사임한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전 재무장관은 구제금융 협상안을 '신(新) 베르사유 조약'에 비유하면서 "굴욕의 정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독립 그리스인' 당 대표인 파노스 카메노스 국방장관은 "그리스를 다 팔아먹게 생겼다"며 성토했다. 긴축을 반대한 일부 아테네 시민들은 그리스 의회 앞에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오늘날 그리스 사태는 전 세계에 경종(警鐘)을 울리고 있다. '간양록'이나 '징비록' 처럼 어떻게 국가위기를 극복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우리가 두 번 다시 외환위기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스 사태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그리스를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몰아붙이며 그들을 비난만 해서는 얻을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