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후폭풍, 본분 잃은 입법부…국회가 바뀌어야 한다

2015-06-29 04:13

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인해 국회가 마비되면서 경기 침체와 메르스 사태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분노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번 거부권 정국 이후 여야 모두 사실상 의사일정에 손을 놓으면서 민낯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아이러니하게도 ‘행정부가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며 변경한 국회법 개정안이 되레 ‘입법부의 본분을 잃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당·청 갈등과 거부권 정국까지 야기한 국회법 개정안 파동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에 사과했던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여권 내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주차공간이 비어 있다.[사진=남궁진웅 기자 tmeid@]


국민 입장에서는 ‘국회법’이 무엇이든 ‘거부권’이 무엇이든 국회가 값비싼 세금을 가지고 놀고 있는 셈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결국 대통령의 입에서 “국회가 꼭 필요한 법안을 당리당략으로 묶어놓고 있으면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당략적인 것은 빅딜을 하고 통과시키는 난센스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렇게 통과시킨 법안들은 국민 세금만 가중시킨다”는 말까지 나왔다.(25일 국무회의 발언)

실제로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관광진흥법개정안, 자본시장법 개정안(크라우드펀딩법) 등 모두 61개 법안 처리가 또 무산됐다. 상당수가 경제활성화법으로 정부가 학수고대하며 통과를 기다리는 법안들이었다. 대통령의 말대로 입법부는 ‘배신의 정치’를 한 셈이 된 것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3%마저 불확실하고 메르스 사태로 인해 경기활성화는커녕 당장의 안위를 걱정 일반 국민들이 볼 때 ‘개점휴업’상태인 국회를 보는 시선은 차가울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의회 독재’라는 말도 나온다.

이럴 바에는 국회를 해산하라는 목소리도 연일 제기된다. 실제 이런 국회를 향한 따가운 민심은 박 대통령의 국회법 거부권 행사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26일 리얼미터 발표)에서도 ‘찬성’(46.8%)이 ‘반대’(41.1%)보다 많았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거부권 파문을 해소하려면 그간 여야의 ‘법안 빅딜’을 가능케 한 ‘국회선진화법’ 을 다시 손봐야 한다는 여론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소수당의 횡포를 정당화하는 것이 ‘국회선진화법’인지, ‘국회후진화법’인지 의심스럽다며 개정 여론이 뜨겁다.

툭하면 야당이 의사일정을 보이콧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법안 하나를 처리하려 해도 관계없는 법안을 맞교환하는 정치적 야합이 횡행한 것도 국회선진화법이란 목소리는 국회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된다. 당초 국회 의원들간 ‘폭력’을 막고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협상의 정치’를 하기 위해 개정된 국회선진화법에 스스로 국회가 발목을 잡힌 것은 아닌지 고민할 시점은 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 야당의 의사일정 보이콧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정치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여당 또한 계파갈등에 휘말려 계속 휘말리다간 내년 총선, 대선에서 '자멸의 길'로 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협상의 정치를 통해 민심을 얻으려면 국회가 바뀌는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당리당략에 휘말리다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거부권 정국은 입법부에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다. 집권 세력의 소통방식 개선, 행정부와 입법부의 동반자적 관계 정립, 아울러 여야 협상 방식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시스템 마련 등을 위한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 정치전문가들의 제언이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강경 대치 정국을 최대한 서둘러 종식시키지 않으면 여, 야, 청와대 모두 민심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면서 "이번 거부권 정국 위기를 기회로 삼아, 여야가 보다 합리적인 협상의 정치로 한단계 도약했으면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