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감염병과 공포심
2015-06-25 09:34
한국에서 평소 입던 동복 차림이었다. 토론토의 강추위 앞에 바로 감기에 걸렸다.
햄버거 살려고 줄 서면서 재채기를 했더니, 옆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God bless you~”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재채기 한 번 했을 뿐인데 신의 축복을 빌다니?
이런 인사는 중세시대 페스트(黑死病) 유행 때문에 생긴 것임을 곧 알게 되었다.
14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 대륙을 휩쓴 페스트는 인구 3분의 1을 감소시킨 인류사의 대재앙이었다. 고열과 함께 발작적인 기침을 하고, 사망률 80%였다. 당시에는 원인 균과 전파경로를 전혀 몰랐기에 사람들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기침하는 외지 나그네가 하루 밤 묵고 갔는데 곧이어 마을 사람들이 쓰러지는 상황을 보면서, 사람들은 기침하는 사람과 접촉하면 병이 생긴다고 직감했을 뿐이다.
이번 메르스 확진자가 제주를 여행했다는 소식은 청정제주를 원하는 도민에게 심적으로 큰 충격을 준 것 같다. 건강해 보이는 외지인이 방문했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균을 가진 환자라는 언론 보도는 시대를 뛰어 넘어 중세인과 같은 공포심을 주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중세의 페스트와 달리 오늘날 메르스는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중세는 페스트 원인균을 전혀 몰랐기에 오직 임상증상을 보인 후에야 환자임을 알 수 있었다. 반면 현대는 메르스 원인균이 무엇인가를 이미 알고 있고, 진단법이 이미 개발되어 있어 환자를 조기에 찾아낼 수 있다.
셋째, 페스트가 쥐벼룩에 의해 전파된다는 사실을 모르니 예방대책을 어떻게 세울지 몰랐다. 하지만, 오늘날 메르스는 감염경로를 알고 있기에 손씻기, 마스크 등의 개인위생 중심의 예방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이처럼 중세의 페스트에 비해, 오늘날은 메르스를 진단하는 검사가 있고, 자택격리를 언제 풀 지와 여러 예방대책을 알고 있다. 의과학의 발달에 힘입은 현대인이라면, 중세인이 가졌던 공포심을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의과학적 지식에 바탕하여 수립된 방역대책에 적극 따라야 하지 않을까?
우리 세대는 ‘신의 가호’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우리를 지킨다는 사실을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배종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제주도 메르스 민간역학조사지원단장.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