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키우는 외국인, 제일모직ㆍ삼성물산 합병반대는 시작일 뿐

2015-06-09 16:37

아주경제 류태웅 기자 =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소송, 소액주주와 연계로 제일모직·삼성물산 간 합병에 반대하고, 배당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 움직임이 외국인 지분이 많은 재벌 상장사 전반으로 번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9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5대 재벌인 삼성그룹 및 현대차그룹, SK그룹, LG그룹, 롯데그룹에 속한 상장사는 현재 외국인 지분율이 평균 37.77%에 달하고 있다.

주총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비율이고, 실제 대기업집단 상장사가 일반 투자자에 비해 외국인 주주 목소리에 상대적으로 더 귀를 기울여 온 이유다.

5대 재벌에 속한 상장사별로 보면 SK그룹 SK하이닉스 주식을 외국인이 53.23% 보유하고 있어 비율이 가장 높다. 삼성그룹 삼성전자(51.8%)도 50% 이상이다. 이어 현대차그룹 현대차(44.43%)와 LG그룹 LG화학(39.07%), 롯데그룹 롯데케미칼(32.32%) 순으로 외국인이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 회사가 국내 증시 시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22%에 이른다. 외국인은 이같은 대형주에 대해 보유 주식을 통해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을 상대로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것도 지분 덕분이다. 이미 가진 삼성물산 지분만 7.12%에 이르고, 이는 3대주주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엘리엇 측은 제일모직·삼성물산 간 합병비율(1대 0.35)에 문제가 있다며 합병을 반대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엘리엇은 이날 삼성물산에 대해 주총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도 냈다. 오는 7월 예정돼 있는 주총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간 합병을 반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은 삼성그룹 측에 배당확대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엘리엇이 애초 더 많은 배당을 받기 위해 합병에 반대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엘리엇이 가진 지분으로 제일모직·삼성물산 간 합병을 막기는 어렵다. 삼성그룹 측이 보유한 지분이 약 14%에 달하고, 엘리엇 쪽에 설 가능성이 낮은 국민연금도 10%에 맞먹는 주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소액주주 모임이 엘리엇을 지원하고 나섰다. 주권을 위임하자는 구체적인 방안도 나온다. 외국인·개인 투자자 간 연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그동안 우리 기업 배당수익률은 해외 수준에 비해 낮았던 게 사실"이라며 "엘리엇은 삼성물산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플러스(+) 알파(α)를 노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실장은 "이번 일로 우리 기업 지배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도 드러났다"며 "외국인 자본이 공조한다면 경영권 분쟁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박경서 한국지배구조연구원장은 "재벌 상장사는 총수 일가를 위한 지배구조를 택하면서 적은 배당, 일감 몰아주기 같은 논란을 낳아왔다"며 "이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외국인뿐 아니라 우리 기관 투자자도 비슷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