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헤지펀드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에 제동
2015-06-04 16:38
아주경제 이수경·김지나 기자 = 미국 헤지펀드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면서 양사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일각에선 합병 무산 가능성도 거론되나, 전문가들은 단지 시세차익을 노린 이벤트라는 해석에 무게를 두고 있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의 지분 7.12%(1112만5927주)를 '경영참가 목적'에서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엘리엇 측은 국민연금(9.79%), 삼성SDI(7.18%)에 이어 삼성물산의 3대 주주로 올라섰다.
엘리엇 측은 주식 매수 후 보도자료를 통해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으며,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밝혔다.
5월 지난 26일 발표된 합병계획에 따르면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게 된다. 삼성물산의 지분 가치를 8조원(주당 5만5767원)으로 평가했는데, 이를 두고 지나치게 저평가했다는 주주들의 불만이 있었다.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4.06%)의 장부가액만 해도 8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은 오너일가와 계열사 등 우호 지분이 50%를 넘지만 삼성물산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와 계열사 지분을 모두 합쳐도 13.59%에 불과하다.
32.11%의 비중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과 국민연금이 엘리엇 측과 함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게 될 경우 합병은 무산될 수 있다. 합병계획상 주식매수가액이 1조5000억원을 넘으면 합병계약은 해지된다. 삼성물산 보통주 지분의 약 17%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합병 무산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당장 주가가 많이 올라 합병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엘리엇 측이 합병 반대의사를 밝힌 이날 삼성물산의 주가는 6만9500원으로 전일대비 10.32% 뛰었다. 삼성물산의 매수청구권 행사가액(5만7234원)보다 높은 금액이어서 사실상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이유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이나 삼성그룹주 펀드를 운용하는 국내 기관들이 반대 의사를 밝히긴 어려울 것"이라며 "합병이 무산되면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후폭풍을 감안하고 판을 깨기는 힘들다"라고 내다봤다.
엘리엇 측의 의도 역시 해석이 분분하나 대체로 단기 차익을 노린 게 아니냐는 의견이 대다수다. 외국계 자본의 '먹튀' 전략이라는 얘기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합병을 무산시킨 후 얻는 이익보다는 시장 가격을 올려서 파는 게 더 이득"이라며 "헤지펀드 특성상 이슈를 통해 매각차익을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삼성물산 측은 합병계획은 수순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양사 간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상 규정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시장이 현재 평가한 기준으로 적용한 것"이라며 "이번 합병은 회사의 미래가치를 제고하여 궁극적으로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SK와 소버린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은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과도한 주주보상이 이뤄질 경우 노동자 정리해고 등 경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