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중국비즈](37) 7300조원 신용카드 시장 30년만에 빗장 풀리다

2015-06-05 08:01
6월1일부터 신용카드 결제시장 개방
비자·마스터 비롯 알리페이, 공상은행 등 진출하나
현지은행 네트워크 구축, 결제표준 등 걸림돌도

중국 유니온페이 연간 결제거래액 및 신용카드 누적발급량[그래픽=아주경제 김효곤 기자]

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빨강·파랑·초록 세 가지 색상의 카드가 겹쳐진 로고가 박힌 은행카드는 중국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신용카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중국 유니온페이(銀聯·은련)의 로고다. 제 아무리 비자, 마스터라 하더라도 이 로고가 새겨져 있지 않은 카드는 사실상 중국에서 사용이 불가능하다. 유니온페이 결제시스템을 거치지 않고선 중국 내에서 결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니온페이의 위력은 중국에서 막강하다. 그런데 지난 1일부터 중국 신용카드 결제시장이 전격 개방됐다. 7300조원 규모에 달하는,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신용카드 시장의 빗장이 풀린 것이다.

▲유니온페이 탄생…폭발적 성장

중국에서 신용카드가 처음 발행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5년이다. 중국은행 광둥지점이 발행한 주장(珠江)카드다. 이듬해 베이징지점에서 창청(長城)카드를 발행했다. 이후 공상은행은 훙몐(紅綿)카드와 무단(牧丹)카드를, 농업은행도 진쑤이(金穗)카드 등 신용카드를 잇달아 발행했다.

당시엔 각 은행마다 제각각 신용카드 결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는 데다가 서로 다른 은행 간 결제네트워크는 물론 동일한 은행 내에서도 지역간 호환이 불가능했다. 열악한 사용환경 속에서 중국 신용카드 시장 발전은 더뎠다.

중국 정부의 은행전산화 프로젝트인 ‘골든카드 프로젝트(金卡工程)’에 따라 2002년 3월 전국 규모의 신용카드 결제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유니온페이가 탄생했다. 공상, 건설, 중국은행 등 88개 주요 은행이 공동 출자해 설립됐다. 유니온페이 설립으로 중국 신용카드 금융시장은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중국 신용카드 결제시장이 6월1일부터 전격 개방됐다. [사진=중국신문사]


중국 국민소득 제고와 함께 신용카드 시장이 빠르게 커지며 유니온페이도 급성장했다. 유니온페이가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발급한 카드(신용·직불카드 포함)가 46억장이 넘었다. 거래금액은 41조 위안(약 7300조원)이 넘었다. 전세계 시장의 85%를 점유하고 있는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지난해 총 결제규모가 10조1000억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전 세계 카드시장의 30% 가량을 중국이 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신용카드 결제 시장은 우리나라와 달리 크게 발급업체(은행), 결제업체(유니온페이), 전표매입사,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소비자가 카드를 긁으면 수수료는 발급업체 전표매입사, 결제업체가 각각 7대 2대 1의 비율로 나눠 가지는 구조다. 유니온페이에 따르면 신용카드 수수료는 0.38~1.25%에 달한다.

중국에서 카드 업무는 은행에서만 취급한다는 것도 우리나라와 다르다. 당연히 카드 발급도 은행에서만 가능하다.

신용카드 결제업체는 유니온페이가 유일하다. 게다가 산하에 두고 있는 전표매입사인 유니온페이머천트(銀聯商務·은련상무)는 중국 전표매입 시장 점유율의 5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유니온페이가 가만히 앉아서 신용카드 수수료의 30%를 가져가는 구조다.

초기 공공이익의 목적으로 설립된 유니온페이는 점차 상업적 기관으로 변질됐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출신의 관료들이 사장을 맡아오면서 정부와의 관계를 이용해 신용카드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30년 만에 풀린 빗장

하지만 1일부터 중국 신용카드 결제시장의 빗장이 풀렸다. 유니온페이가 독점했던 위안화 신용카드 결제 시장이 열리게 된 셈이다. 지난 1985년 중국 최초 신용카드가 발행된 지 30년 만이다.

중국 국무원은 앞서 4월 22일 은행카드 청산(결제) 기구 신청 및 관리에 관한 규정을 통해 요건을 충족하는 국내외 업체가 카드 결제 시스템을 신청해 운영할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결제기구 신청 요건으로는 ▷중국 내 등록 자본금 10억 위안(약 1740억 원) 이상 ▷신청일로부터 1년 전의 총자산이 20억 위안 이상이거나 순자산이 5억 위안 이상 ▷은행 지불 결제 등 해당 업무 종사 기간 5년 이상 및 연속 흑자 3년 이상 ▷신용도가 양호하고 최근 3년간 위법행위 기록이 없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제시됐다.

다만 아직까지 신용카드 결제시장 개방 관련 세칙은 나오지 않았다. 현재 중국 인민은행과 은행관리감독위위원회, 상무부 등 관련부처에서 이미 초안은 완성했으며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사실 이번 개방은 세계무역기구(WTO)가 2012년 내린 결정에 따른 것이다. WTO는 미국이 제기한 소송에서 외국계카드사의 진출을 원천 봉쇄하는 중국의 폐쇄 정책이 국제 규정에 어긋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중국 신용카드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 온 유니온페이의 입지가 줄어들고 중국의 카드 결제 시스템도 경쟁 체제로 전환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유니온페이 스원차오(時文朝) 사장은 “역사가 변할 그 날이 예상보다 빨리 왔다”며 13년간 좋은 시절이 끝났음을 한탄했다.

▲7300조원 시장 노리는 ‘제2,3 유니온페이’

중국 신용카드 결제시장에 진출할 유력한 후보로는 비자 마스터카드와 같은 외국계 카드사, 알리페이 텐페이 같은 전자 지불결제 대행업체, 그리고 공상은행 등 은행권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실제로 중국 신용카드 결제시장 개방을 가장 환영한 것은 비자, 마스터카드 등 외국계 카드사다. 신용카드 결제시장 개방 소식이 나온 22일(현지시각) 두 카드사 주가는 4% 이상 올랐다.

마스터카드는 지난 1988년 베이징 대표처를, 비자 카드는 5년 후인 1993년 중국 대표처를 설립했으나 줄곧 중국 내에선 카드 영업만 가능했을 뿐 실질적인 카드 결제망은 구축이 불가능했다.

아제이 방가 마스터카드 CEO는 “중국 시장에서 발전의 기회를 ‘갈망’한다”며 내년 말 전까지 중국에서 결제 시스템 구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외국계 카드사들은 관련 세칙이 공표된 후에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골드만삭스는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매년 중국 시장점유율을 10%씩 늘려간다면 매년 영업수익이 1.1~1.2%포인트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알리페이나 텐페이 등과 같은 중국 지불결제 대행업체는 신용카드 시장 진출에 환영을 표하면서도 진출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이다.

알리페이는 현재 중국 전자결제 시장 점유율이 48.8%에 달해 ‘인터넷 상의 유니온페이’라 불릴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알리페이를 이용하는 전 세계 회원 수는 지난해 7월 기준으로 8억2000만명이며, 지난해 전체 결제금액은 약 450조원이다.

중국 신용카드 결제시장 개방을 앞두고 알리페이는 본사를 항저우에서 유니온페이가 위치한 상하이로 옮긴데다가 회사 등록자금도 10억 위안으로 맞췄다. 신용카드 결제시장 진입조건과 딱 맞아떨어진다. 다만 이미 온라인 결제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는 알리페이가 굳이 ‘구시대 유물’인 신용카드 시장에 진출하겠냐는 전망도 있다.

중국 은행권에서는 공상은행이 막강한 후보로 꼽힌다.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고 돈을 가장 잘 버는 은행인만큼 막강한 자금력을 등에 업고 중국 신용카드 결제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현재 공상은행은 누적 카드 발급량 1억 장 돌파로 중국 최대 신용카드 발급 은행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 누가 됐든 중국 신용카드 결제시장에 진출해 자리잡기까지는 최소 2~3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장에서 새로 신용카드 결제시스템 구축은 물론 현지 은행, 전표매입사와의 네트워크도 탄탄히 구축해야 한다. 13년간 중국 시장에서 노하우를 쌓아온 유니온페이를 하루 아침에 뛰어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다.

신용카드 결제 표준 문제도 걸림돌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로페이·마스터·비자 등 세계 3대 신용카드사가 공동으로 만든 EMV를 국제 표준기술로 채택하고 있다. 반면 중국에서는 인민은행이 요구하는 PBOC 3.0 표준을 채택해야 한다. 중국에서 자체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PBOC 3.0 표준을 따라야 한다. 이에 따른 비용과 시간 소요도 만만치 않은 문제로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