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방북 무산…"북한, 누에고치처럼 외부와 격리"

2015-05-21 08:00
전문가들 "점차적으로 도발 수위 높여 한반도 긴장 조성하려는 것" 지적

아주경제 김동욱·강정숙 기자 =북한이 20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하루 앞두고 아무런 설명 없이 방북 허가를 갑자기 취소한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점차적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면서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려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북한의 정확한 속내를 알기는 어렵지만 '남·북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자처했던 반 총장을 돌연 막아세우면서 '남한과의 대화는 당분간 없을 것'이라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누에고치가 털실을 뽑아 자기 몸을 감싸듯 북한도 자신들의 체제를 외부와 격리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김정은 주위에 "책임 안 지겠다" 분위기 팽배 한 듯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 등 최근 북한 내부의 복잡한 사정을 감안할 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주변에는 책임지지 않으려는 기류가 팽배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20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하루 앞두고 아무런 설명 없이 방북 허가를 갑자기 취소한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점차적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면서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려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반기문 총장(왼쪽)과 정의화 국회의장이 악수하는 모습. [사진제공=국회의장실]


국제사회나 남한과 대화를 하면 당분간 평화모드로 지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북한 입장에서는 국면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도 없고 얻어낼 것도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공포정치' 발언이나 국가정보원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 발표에 대해 북한이 불만을 품고 항의의 뜻으로 반 총장의 방북을 무산시킨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불만 표출'의 수단으로 방북 허가를 취소했을 수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실험을 둘러싼 국제 사회의 비난 등 최근의 정세와, 반기문 총장이 북한의 '개방' 필요성을 주장한 것 등에 대해 불쾌감의 뜻으로 방북을 '보이콧'했다는 것이다.

◆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실험 등 강경파들 득세

최근 김정은 제1위원장 주변에 '대화국면' 분위기 조성을 반대하는 강경파가 득세한 것을 이유로 꼽는 시각도 있다.
 

김정은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공포정치' 발언이나 국가정보원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 발표에 대해 북한이 불만을 품고 항의의 뜻으로 반 총장의 방북을 무산시킨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사진=신화통신]


북측은 당장 이날 오후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긴장 수위를 높였다.

최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에 강하게 반발하며 "우리의 핵타격 수단은 본격적인 소형화, 다종화 단계에 들어선지 오래"라면서 "함부로 도전하지 마라"고 위협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거론하며 "유엔 안보리가 세계평화와 안전 보장 사명, 헌장에 명기된 임무를 망각하고 미국의 독단·전횡에 따라 움직이는 기구, 공정성과 형평성을 줴버리고(내팽개치고) 주권존중의 원칙,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스스로 포기한 기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반 총장에 대한 방북 허가를 철회한 직후 안보리에 대한 비난이 눈에 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관계를 전향적으로 풀기보다는 일정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대결적 분위기를 가져가는 것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대한 대응에 낫고 내부 결속에도 도움이 된다고 봤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북한은 반 총장에 대한 방북 허가를 철회한 직후 안보리에 대한 비난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유엔 홈페이지]


그는 또 "유엔이 북한 인권문제부터 대북제재까지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반 총장 방북이 한반도 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가자는 북한 입장에도 배치돼 강경파들이 반대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속내가 어떤 것이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러시아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도 임박해 취소했던 것에 이어 이번 반 총장 방북 허가도 하루 전날 돌연 철회한 것으로 볼 때 북한의 '외교적 즉흥성'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남북관계 당분간 냉각…크게 움직일 여력 없을 것

'외교적 결례'가 잇따르면서 북한의 외교력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심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경험 부족'에서 기인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남북관계는 냉각기를 지속하면서 크게 움직일 공간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사진=판문점 갤러리 제공]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합의해놓고 철회한 것은 변덕을 부린 것인데, 젊은 김정은의 경험과 판단력이 부족해 미숙한 측면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반기문 총장에 대해 국제기구의 수장이면서도 남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판단해 남북간 대화의지가 없다는 점을 보이기 위해 방북 허가를 취소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 매체는 지난 2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반 총장을 만났다는 사실을 보도한 이후 반기문 총장을 '유엔 사무총장'이라고만 지칭할 뿐 실명을 직접 거론한 적이 없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우선시하는 우리 정부의 기조가 확고하고 바뀔 여지가 없어 보이니까 다시 도발쪽으로 선회한것 같다"면서 "당분간 남북관계는 냉각기를 지속하면서 크게 움직일 공간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