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쓴소리’ 박용성 회장, 말로 흥하고 말로 퇴진한 50년 기업인 여정"

2015-04-22 16:14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전 중앙대 이사장)[사진=두산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50년의 기업인 생활을 마감하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생애 마지막 역작으로 중앙대학교 개혁을 위해 자신이 직접 이사장에 올랐으나 해내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나게 된 것이다.

지난 2005년 40년의 준비 끝에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으나 형제의 난으로 4개월 만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는 박용성 회장은, 이번에도 중앙대 이사장에서 사임해 충분히 능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자리에만 오르면 불명예 퇴진하는 ‘불운의 경영인’으로 남게 됐다.

박두병 회장의 6남 1녀중 3남인 박 회장은 어릴 적부터 형제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성격이 활발했다고 한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로부터 ‘괴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는데, 이러다보니 엄격한 아버지로부터 숱하게 말채찍으로 종아리를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회초리가 그의 성격을 바꿀 순 없었다.

1965년 대학 졸업후 상업은행에 입행해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은 그는 국내 최초의 단자회사인 한국투자금융 초대 영업부장을 거쳐 1973년 자신이 설립을 주도하다시피한 두산그룹 최초의 금융 계열사인 한양투자금융 상무이사로 입사했다. 이후 1984년 동양맥주(현 오비맥주) 사장에 올라 최고경영자(CEO)에 등극한 뒤 두산개발 대표이사 사장, 동양맥주 대표이사 부회장을 거쳐 두산그룹 부회장, 동양맥주 대표이사 회장,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회장, 두산그룹 회장, 두산중공업 회장, 두산중공업 이사회 의장, 중앙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국제상업회의소(ICC) 회장, 대한체육회 회장 등 대외활동도 많이 했는데, 한창 때에는 무려 90여개의 직함을 보유하기도 했다.

한번 맡은 일에 대해서는 끝을 볼 때까지 잠 안자고 매달릴 정도로 업무에 열정을 쏟는 스타일의 박용성 회장은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받아들였고, 그 일을 해냈다.

박용성 회장이 갖고 있던 또 다른 강점은 거침없는 ‘발언’이었다.

그룹 구조조정 당시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는 ‘걸레론’을 내세우며 알짜기업이던 OB맥주 매각을 주도했던 그는 대한상의 회장 시절에는 “기업이 핵심역량만 있으면 문어발이 아니라 지네발 경영을 해도 좋다”는 ‘지네발론’, “한국 기업들은 좋다고 하면 충분한 검토도 없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시장을 어지럽히는 들쥐떼 근성을 갖고 있다”며 내실경영의 필요성을 역설한 ‘들쥐떼’론 등을 제시하며 정부와 재계에 연이어 소신 발언을 내놓았다. 덕분에 얻은 별명이 ‘미스터 쓴소리’였다.

대한상의 회장 당시 박용성 회장은 기자들에게 “난 하고 싶은 얘기는 해야 해. 하지만 옳은 말만 하니까”라며 “당장은 귀에 거슬리겠지만 한 번 더 생각하면 상대방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만하기 때문에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소신발언을 바탕으로 박용성 회장은 강력히 ‘개혁’을 강행했고,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저항세력과의 갈등을 뚝심으로 해결해 나갔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그룹의 구조개편은 ‘투사’를 자처한 박용성 회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소비재 위주의 사업이 한계를 나타내며 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자 박용성 회장을 필두로 한 두산 최고경영진들은 재계에서는 처음으로 연봉제 도입, 팀제로의 조직개편, 인력 구조조정, 계열사 매각 등을 추진했다.

무수한 반대와 비난 속에서도 박용성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덕분에 IMF외환위기 사태 당시 두산은 다른 그룹에 비해 거의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2000년대부터 대대적인 기업 인수·합병(M&A)을 추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 대어를 낚았고, 대신 오비맥주를 비롯한 소비재 기업을 모두 내다 팔아 현재 인프라지원서비스(ISB) 기업으로 바꿨다.

2008년 중앙대를 인수하며 이사장직에 오른 박용성 회장은 기업 경영은 동생과 조카,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기고 학교 개혁에 모든 열정을 쏟았다.

“우리 재계가 지난 40년간 인재개발의 덕을 봤다면 지금부터는 재계가 직접 인재를 길러서 사회에 보답해야 한다”며 경쟁력 있는 인재를 키우는 요람으로 만들기 위해 “대학도 산업이다”는 시각에서 대개혁을 이루겠다는 게 그의 의지였다. 이는 대졸 출신 인재가 매년 쏟아져 나와도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과 매치가 안돼 기업들이 재교육에 많은 지출을 할 수 밖에 없는 현 교육제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학내 교수들과 학생들의 반발에 이어 그의 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교육계 전반으로 확산됐고, 여기에 최근 공개된 그의 ‘막말 이메일’로 인해 그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옳은 말로 신뢰를 쌓았던 박용성 회장이 '옳지 않은 말'로 무너졌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박용성 회장은 사학의 폐단과 교수와 교직원들의 복지부동 등을 타파하겠다며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교육계 일선에서 본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비난할 수 있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박 회장의 개혁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양성의 요람이 되 줄 수 있지 않겠느냐며 기대를 걸기도 했다. 다만, 적절하지 못한 발언으로 인해 본래의 순수한 취지가 와전돼 버린 것은 아쉬운 심정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