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아트바젤홍콩과 K-아트, 그리고 바람난 단색화

2015-03-16 11:00
김윤섭 (미술평론가ㆍ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김윤섭 미술평론가]

‘홍콩 간다’는 말이 있다. 너무 기분 좋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비속어로도 통한다. 요즘 한국의 단색화가 이런 기분일까? 적어도 몇몇 작가는 분명 그 주인공일 것이다. 아트바젤홍콩 아트페어 기간에 맞춰 사방에서 한국 현대미술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더비경매 홍콩지점의 아시아 아방가르드 기획전은 단연 눈길을 모았다. 한국 현대회화 대표선수의 마스터피스를 한자리에 모았다. 박서보 화백과 하종현 화백은 전시기간에 국제무대의 새로운 고객과의 만남을 위해 홍콩까지 초대됐다.

 이번 소더비홍콩의 기획전에는 김환기 외에도 정상화ㆍ이우환ㆍ박서보ㆍ하종현ㆍ정창섭 등 현재 미술시장을 이끌고 있는 ‘단색화 블루칩 작가’의 작품 33점이 대거 선보였다. 관계자에 의하면 크리스티에 비해 홍콩 진출이나 한국 현대미술 조명에 뒤처진 소더비로선 나름의 차별적인 선택이 필요했다고 한다. 단순히 판매상품의 런칭이 아니라, 한국 미술에 대한 체계적인 소개에 목적을 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전시장엔 한국 단색화의 미술사적 위치와 비중을 보여주는 연보까지 소개한 것이 전시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었다.

물론 이번 소더비홍콩의 특별전에 출품된 작품의 대부분은 새로운 주인을 만났다. 그것도 비중이 높은 개인 컬렉터나 기관 등 소장된 이후에 한국 현대미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지속시켜줄 것이라 귀띔한다. 때마침 일부러 전시장을 찾았다는 한국의 한 관람객은 “한국 대표 작가들의 이렇게 좋은 작품들이 해외에 팔리게 되면, 나중에 우리 문화재가 유출된 격이 아닐까”라고 염려하기도 했다. 과정은 차치하더라도 국제적인 시선이 한국 현대회화에 쏠리기 시작할 때, 기왕이면 완성도 높은 작품을 앞세워야 그 열기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올해 아트바젤홍콩의 열기는 정말 대단했다. VIP 프레오픈에선 불과 3시간 만에 주요 작품들이 팔려나갔다. 일요일 일반고객 대상 티켓은 사전에 매진됐고, 페어 기간 내내 굴지의 메이저급갤러리는 물론 신규 화랑에까지 인산인해였다. 전시장 중간 중간에 비엔날레를 방불케 할 정도로 큰 스케일을 자랑하는 작품들이 발걸음을 잡았다. 어떤 부스는 아예 판매할 작품이 아닌, 실험적인 설치작품으로 채웠을 정도였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도 선전했다. 가고시안갤러리의 전속작가가 된 백남준은 물론, 이미 국제무대에서 자리 잡은 서도호나 양혜규ㆍ이수경ㆍ전준호ㆍ채성필, 단색화의 대표적인 원로 작가군 등 한국 현대미술의 화려한 잔치도 이어졌다.

같은 기간인 일요일 오후에 홍콩에서 처음 단독 경매에 나선 K옥션 역시 무사히 연착륙했다. 경매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역시 단색화를 위시로 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현지의 관심이 높았다. 다양한 국적과 연령층의 고객이 경매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켰다. 외국 고객 못지않게 한국의 주요 컬렉터도 총출동한 느낌이었다. 경매에 참여한 한 고객은 “평소 관심을 가졌던 작가의 작품이 해외 시장에선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이번의 뜨거운 열기를 목격한 덕분에 앞으로도 미술애호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아트바젤홍콩 기간에 홍콩을 찾은 한국인은 대략 1천여 명에 달할 거라는 얘기도 있다. 수십 명에서 소수까지 전문 아트투어 팀을 꾸린 예도 10여 곳이 넘었을 정도이다. 과연 이 많은 한국인이 홍콩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세계적인 시장에서 한국 미술시장의 활약을 목격하고 싶었을 것이다. 적어도 홍콩을 찾은 사람이라면 한국미술의 끊임없는 비약을 응원할 것이다.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홍콩 갈 정도의 미술애호문화’가 넘쳐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