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정적' 넴초프 피살...'정치적 암살설' 제기되며 정국 혼란
2015-03-01 11:27
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55) 전 부총리가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의 대규모 거리시위 예정일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에 발생한 이번 사건을 두고 야권에서는 '정치적 암살'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어 정국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도 투명한 수사를 촉구하며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 배후세력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 4발의 총알 맞고 즉사...야권 '정치적 살인' 비난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 등은 러시아 내무부는 넴초프가 27일 저녁 11시 40분(현시시간)께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불과 200m 정도 떨어진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를 걷던 중 지나가던 차량에서 가해진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흰색 승용차를 타고 넴초프에게 접근한 괴한들은 6발 이상의 총격을 가했으며, 그 중 4발이 넴초프의 등에 맞았다. 1발은 심장을 관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넴초프와 동행했던 우크라이나 모델로 알려진 24세의 이 여성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사건 수사를 맡은 연방수사위원회는살해 당시 넴초프와 함께 있었던 여성과 다른 목격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는 한편 사건 전후 넴초프의 통화 내용과 그의 이동 경로가 찍힌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이번 넴초프 피살사건의 배후세력 및 범행동기와 관련해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연방수사위원회 블라디미르 마르킨 대변인은 "국내 정치 혼란 조장을 위한 도발,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특정 세력이 넴초프를 살해하고 그 책임을 푸틴 정권에 지움으로써 러시아에 정치적 혼란을 조장하려 했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또 넴초프가 친서방 성향의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정권을 지지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세력이나 러시아 내 과격 민족주의 세력이 그의 '반역행위'를 응징하려 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설도 거론됐다. 앞서 넴초프가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비판한 발언으로 이슬람 과격 세력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됐다.
여성관계 등 개인적 원한 가능성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넴초프는 별거 중인 부인 외에 또 다른 2명과 사실혼 관계에 있으면서 모두 4명의 자식을 뒀다. 최근에는 이날 피살 사건 당시 함께 있었던 우크라이나 모델 출신의 여성과 수년 동안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야권은 넴초프가 푸틴이 집권한 지난 2000년대 이후 줄곧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반대해온 대표적 인사였다는 점에서 크렘린이 배후라고 주장했다.
야권 운동가 드미트리 구트코프는 "의심할 여지없는 '정치적 살인'"이라며 "현 정권이 직접 청부하지 않았더라도 정권이 선전해온 (야권에 대한) 증오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주요 야당인 '야블로코' 당수 그리고리 야블린스키도 "최악의 범죄이며 할 말이 없다"면서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고 주장했다.
△ 국제사회 '공정수사' 촉구...오바마 "잔혹살인" 비난 성명
이번 넴초프 피살 사건과 관련해 세계에서도 공정한 수사를 요구하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에서 이번 사건을 "잔혹한 살인"이라고 비난하면서 러시아 정부가 신속하고 공정하며 투명한 수사를 벌일 것을 촉구했다. 오바마는 러시아의 부패에 맞선 넴초프의 용기있는 투쟁을 칭송하면서 그를 헌신적인 민권 수호자라고 높이 평가했다.
유럽연합(EU) 대변인도 성명을 통해 "충격을 받았다"며 조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구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넴초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가교 역할을 해왔으며 그의 피살로 이 다리가 붕괴됐다"면서 "이는 우연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중부 니제고로드스크주(州) 출신의 넴초프 전 부총리는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 운동을 이끌어온 대표적 반정부 인사다.
지난 2008년 다른 야권 지도자들과 함께 야권 운동단체 '솔리다르노스티'(연대)를 창설해 오면서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경제 실책 등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아울러 푸틴의 장기집권 시도 규탄, 러시아 헌법 개정, 부패사건에 대한 수사 강화 등을 주장해 왔다.
넴초프는 러시아의 대표적 대표적 친(親)우크라이나 인사로도 유명하다. 최근 들어 지난해 다시 불붙은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권 교체 혁명도 지지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도 반대해 왔다.
특히, 그는 오는 29일 모스크바에서 올해 들어 첫 번째 반정부 시위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살해 위협에 시달린 바 있다.
야권은 모스크바 남쪽 지역에서의 반정부 거리행진을 취소하고 다음 달 1일 시내 중심가에서 추모 행진을 벌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