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단협 타결 현대중공업 “지배구조 개편, 조선 계열사 통합에 주력할 듯”

2015-02-23 15:48

정기선 현대중공업 상무[.]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9개월 여간 갈등을 마무리하고 설 연휴 전날인 지난 17일 임금 및 단체협상에 조인한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이 24일 출근하며 실질적인 2015년을 시작한다. 임·단협 타결에 따른 특별 휴가를 하루 더 받아 총 6일을 쉬었다.

지난해 8월과 9월 각각 친정으로 복귀 후 7개월 여 만에 최대 고비를 넘어선 최길선 회장·권오갑 사장 등 투톱 대표체제 또한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색깔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창업주 고 정주영 명예회장 시절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으로 상선을 수주했다는 아름다운 전설을 곱씹을 때가 아니다. 임원 수 축소, 희망퇴직 실시, 사업부 통합, 계열사 합병 등 일련의 구조개혁은 생존만을 위해, 과거의 영광을 버리기 위한 작업이었다.

현대중공업그룹 앞에 놓인 당면 과제는 ‘제대로 된 그룹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그동안 ‘따로 또 같이’라는 표현대로 계열사간 느슨한 연관 관계를 이뤄왔다. 1989년 대주주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올해로 26년째 전문 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이러한 이유중 하나다. 지난 2013년 아들 정기선 현대중공업 상무가 입사하면서 가까운 시일 안에 오너 경영체제로 전환될 것임을 암시했고, 곧이어 최 회장·권 사장이 복귀했다. 이에 두 사람의 역할은 오너 경영체제로의 복귀를 안정적으로 이뤄내는 것이며, 그 해법은 ‘중앙 집권체제의 강력한 그룹화’에서 찾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설치된 ‘그룹 기획실’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그룹 경영체제의 최정점이다. 이 조직에서 그룹의 미래를 설정할 전체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단협 타결 지연으로 아직 지향점을 제시하지 못한 현대중공업 그룹은 주주총회를 전후로 뭔가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지향점은 그룹화를 위한 '계열사 구조조정'과 '지배구조 개선'으로 요약된다.

계열사 구조조정의 최대 이슈는 중공업과 미포조선, 삼호중공업 등으로 나뉜 조선 계열 3사의 통합 여부다. 기존에는 중공업이 중대형 선박 영업과 설계를 대표하고 삼호중공업은 중공업 수주 물량을 하청 받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으며 미포조선은 중형 선박에 특화해 별도의 영업과 설계조직을 뒀다. 그러다가 지난해 3사의 영업조직을 통합했고 설계 부문은 통합해 자회사를 설립했다. 인력의 타 사업부 이동 및 계열사간 순환도 이뤄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부인하고 있지만 합병을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 전망이 맞다면 남은 것은 물리적인 합병을 결정할 시기가 언제인가를 주시해야 한다. 3사 합병은 중국과 일본의 거센 추격 속에서도 향후 조선업계에서 현대중공업이 부동의 1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다. 또한 ‘중공업→삼호중공업→미포조선→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끊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그룹 차원에서도 핵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3사 합병은 지배구조 개선과도 맞물린다. 정몽준 대주주는 현대중공업 지분 10.15%를 보유하고 있으나 정기선 상무는 지분이 없다. 아버지로부터 지분을 받으려면 막대한 상속세를 물어야 하며 절차도 복잡하다. 이에 업계에서는 현실적인 대안은 지주회사 체제로의 개편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지주사가 정몽준 대주주의 지분을 인수하고, 정 상무는 지주사 대표로 선임돼 그룹 대표로 올라서고, 동시에 조선 3사를 비롯한 계열사들이 지주사 체제 아래로 들어가 통제를 받는다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를 통해 삼성그룹 후계구도의 정점을 찍었듯이 정기선 상무도 중공업 등 조선 3사 장악해야 안정된 후계 작업이 진행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아직까지 그룹 체제 개편에 대한 언급을 일절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논의가 이뤄졌고 큰 틀의 방향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4대 그룹 이하의 주요 대기업들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어떻게 변화를 이뤄낼지가 주요 관심거리다. 창사 이래 가장 강력한 개혁이 예고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