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넘어야 내가 산다"…금융사 CEO, 경쟁사 발언·공략 활발

2015-02-22 07:00

(왼쪽부터)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겸 KB국민은행장, 한동우 신한금융그룹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사진=각사 제공]


아주경제 문지훈 기자 = 최근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공식석상에서 경쟁사에 대해 언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쟁사를 뛰어넘어 국내 리딩 금융그룹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경쟁사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사례도 주목받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지주 CEO들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경쟁사와 실적 등을 비교하는가 하면 경쟁사에서 몸담았던 인물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KB금융지주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를 통해 지난 13일 선정한 사외이사 최종 후보 7명에 최영휘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포함시켰다. 최 전 사장은 1982년 신한은행 창립멤버로 1999년 부행장, 2001년 신한금융 부사장을 역임했으며 2003년 신한금융 사장직을 맡아 라응찬 전 회장에 이어 그룹 2인자 자리에 올랐다. 특히 굿모닝증권과 조흥은행 인수를 지휘하며 그룹을 이끌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쟁 금융사 임원이나 사외이사 경력을 가진 인물들도 대거 영입했다. 최 전 사장 뿐만 아니라 신한은행 사외이사로 재직한 바 있는 박재하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 부소장과 김유니스 이화여대 교수, 최운열 서강대 교수 등도 사외이사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박 부소장의 경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신한은행 사외이사로 활동했으며 2010년에는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김 교수는 2008년 하나금융지주 준법감시 담당 부사장으로 일한 바 있으며 최 교수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를 맡았다.

금융권에서는 KB금융이 경쟁사 전직 CEO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것은 유례가 없는 사례이자 리딩 금융그룹 자리를 탈환하기 위한 KB금융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각종 사건·사고를 비롯해 KB사태 등을 겪은 뒤 내부 출신 인사인 윤종규 KB금융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이 취임하면서 리딩 금융그룹 탈환에 대한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을 추진했으나 법원의 제동으로 난관에 봉착한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경우 외환은행의 실적을 지방은행과 비교하며 위기상황에 대해 강조했다.

김 회장은 지난 10일 김병호 하나은행장 취임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외환은행의 실적 부진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대로 가면 부산은행에 역전당할 가능성이 높다"며 "(부산은행보다) 직원 수는 2배가 넘고 자산은 3배가 많은데 상당히 심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역시 경쟁사를 예로 들며 리딩 금융그룹 고수를 위한 경쟁력 강화에 대해 언급했다. 한 회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농협금융지주가 전문성을 갖춘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증권사에서 영입해 자산운용을 강화하는 것은 대단히 옳은 방향"이라며 "경쟁사의 움직임을 보고 신한도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금융사 CEO들의 이같은 발언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과거와 사뭇 다른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에는 경쟁사와의 비교우위에 대해 내부적으로만 논의했을 뿐 공식석상 등에서 대외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조직 안팎에 위기의식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 중 하나"며 "금융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