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재편, 현대차도 움직였다

2015-01-14 17:49


아주경제 이수경·류태웅 기자 = 현대차그룹이 가세하면서 국내 4대 재벌의 지배구조 재편 윤곽이 모두 드러나고 있다. LG그룹이 가장 먼저 지주전환을 마친 가운데 삼성그룹이 삼성SDS와 제일모직을, SK그룹은 SK C&C를 상장시키며 경영권 강화에 나선 바 있다. 순서로 볼 때 현대차그룹이 가장 늦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몽구 회장 일가 역시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오토에버, 이노션 같은 계열사를 중심으로 지배구조 재편에 대비해왔다.

​◆무산된 글로비스 지분매각 '시간문제'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맏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은 지난 12일 보유중인 현대글로비스 지분 13.4%(502만2170주)에 대해 장외 블록딜(대량 매매)을 시도했으나, 투자자를 찾지 못해 결국 무산됐다.

그러나 증권업계에서는 '시간문제'라는 얘기가 나온다.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13일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진 데 이어 이날도 9% 넘게 하락한 이유다.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팔아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일 것이라는 추측에 여전히 무게가 실린다. 매각 차익의 20%인 양도세를 부담하면서까지 글로비스 지분을 현금화하려 한 것만 봐도 일단 오너가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설명이다.

반면 현대차그룹 측은 공정거래법상 내부거래 규제 해소를 위한 선택이었다면서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팔아도 정 회장 부자의 최대주주 역할은 지속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블록딜 재추진, 글로비스와 모비스 합병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된다. 현재로선 합병설이 가장 유력하다. 현대글로비스가 작년 11월 폴란드 물류업체 아담폴을 인수해 몸집을 불린 것도 합병을 감안한 절차라는 해석이다.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계열사를 잇따라 합병하며 지배구조 개편의 기반을 마련해왔다.

지난해 1월 현대제철의 현대하이스코 냉연부문 합병에 이어 4월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이 통합됐다. 11월에는 현대위아가 현대위스코와 현대메티아를 흡수합병했다.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대기업 그룹 중 대주주 일가 지분이 30%를 초과하는 계열사의 내부거래 금액을 규제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날을 피하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실제로 정 부회장은 현대엠코와 현대위스코 지분을 각각 25.06%와 57.87% 보유해 이들 계열사의 최대주주였으나 합병을 통해 각각 지분율이 규제 범위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와 더불어 후계 구도 마련을 위한 실탄 확보가 본래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올해 상장을 앞둔 계열 광고회사 이노션이 여기에 해당되는 사례로 꼽힌다. 이미 정 부회장은 작년 8월 규제 회피를 위해 이노션 지분 30%를 팔아 3000억원의 재원을 얻었고, 앞으로 이노션이 기업공개 후 지분가치가 오르면 덩달아 잔여지분 10%의 상승분을 획득하게 된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의 한 연구원은 "재벌들이 3세 경영 체제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상속·증여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본인들이 원하는 회사의 지분 확보를 위해 여러 계열사들을 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도 '7부능선'… SK는 C&C와 합병 관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는 삼성그룹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삼성그룹은 최근 제일모직 상장을 계기로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7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그룹은 작년 하반기부터 복잡하게 얽힌 순환출자고리를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의 와병에 따라 더욱 속도가 붙었다.

2013년 9월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가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문을 인수키로 한 데 이어 삼성SDS가 삼성SNS 흡수 합병을 결정했다. 작년 3월에는 삼성SDI가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이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이 합병을 발표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도 합병을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또한 삼성그룹은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삼성조합화학, 삼성토탈 등 4개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키로 해 올 상반기 중 이를 마무리지을 예정이다. 이밖에도 삼성생명의 삼성물산 지분 처분, 삼성카드의 제일모직 지분 처분 등으로 2013년 30개에 달하던 순환출자 고리는 작년 한 해동안 10개까지 줄어들었다.

삼성은 제조업 분야에서 삼성전자, 금융권에선 삼성생명을 주력 계열사로 정리해가고 있다. 증권업계에선 이재용 부회장이 지배구조의 정점에 놓인 제일모직을 통해 양대 주력 계열사의 지배력을 강화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삼성SDS와 제일모직 상장은 이를 위한 포석이다. 여기서 확보한 현금은 승계 비용이나 여타 계열사 지분 확대에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보호예수기간이 끝나 삼성SDS 지분을 현금화할 수 있는 올해 5월 상속과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지주사 전환을 추진할 것이란 전망도 꾸준히 내놓고 있다. 

LG그룹은 이미 지주사 전환을 완료했다. 지주회사인 LG가 주요 계열사인 LG전자(33.7%), LG유플러스(36.0%), LG화학(33.5%), LG CNS(85.0%), LG생활건강(34.0%)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01년 LG화학을 인적 분할해 계열사를 나누고, 이후 현물출자 유상증자 방식 등을 통해 일부 계열사 지분을 취득, 합병 등을 통해 현재의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현재는 오너 4세의 경영권 승계가 관전포인트로 꼽힌다.   

SK그룹의 경우 SK와 옥상옥 격인 SK C&C와의 합병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주사인 SK 지분을 0.02%만 보유하고 있으나 SK의 대주주인 SK C&C 지분을 32.9% 갖고 있다. 이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은성민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재벌들의 지배구조 개편 등의 이슈는 작년부터 시작됐고 앞으로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어떤 종목들이 수혜를 입을지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