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Talk]'미디어작가에서 조각가'로 변신한 '제2의 백남준' 이이남

2014-12-16 16:48
4년만에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공중부양한 예수 '피에타'상등 선봬

 

[가나아트센터 전시장계단에 걸린 베르메르의 하루 (ed. of 6, 6min 30sec), 2014, LED TV (4ea), CRT TV, 510x71.7x4cm. 사진=박현주기자]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우유가 아래로 길게 흘러내리는 '베르베르의 하루'는 그의 '박연폭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더이상 신기하지 않다. 'TV에서 움직이는 그림'.  이미 그가 9년전 미술계를 깜짝 놀라켰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내는 물론 중국작가들도 그의 작품을 따라할 정도다.  지난 2006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서 떠오른 그는 당시 '병풍에 움직이는 그림'을 내놓아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김홍도의 '묵죽도'와 모네의 '해돋이'를 결합한 작품속 인물들과 풍경이 병풍과 병풍으로 움직이고 이어졌다. 

 단 3분∼5분. 움직이는 그림앞에 몰린 사람들은 '디지털 시대' 를 실감했다. 당시 광주에서 올라온 그는 단박에 미술시장 스타작가로 등극했다.  이이남(45)은 '미디어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또 '백남준을 잇는 미디어아트 선구자', '제2의 백남준'이라는 극찬까지 쏟아졌다.

 TV나 컴퓨터 모니터에 전통 한국화를 융합해 그림과 소리·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신개념의 작품이다. 대박이 나자 삼성이 반겼다. 2009년 삼성 파브 'LED TV'에 작품을 담았고 삼성은 그에게 TV모니터를 제공했다. 그에게 모니터는 캔버스. 제작의 고행이 해결되자 상상력은 날개를 달았다. 러브콜이 이어졌다. 1년에 60여차례 전시를 열고 홍콩크리스티·소더비 등 해외 경매에도 작품을 올렸다. 뉴욕 아모리쇼, 독일 쾰른 아트페어, 두바이아트페어, 베이징 아트페어, 스페인 비엔날레, 런던 사치갤러리에 한국 대표 작가로 참여해 전시도 했다.  내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작가로도 초대돼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미디어아트 작가'로 위세를 떨치던 그가 4년만에 여는 개인전은 의외다. 16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에서 여는 29회 개인전은 '다시 태어나는 빛'이라는 전시 타이틀 처럼 그가 조각가로 새로 태어나는 부활의 예고편 같다.

 전시장은 수많은 밀로의 비너스상 뒷모습으로 출발한다. 비너스상 등판에는 '자승자박'등 한자어들이 영상으로 비춰지며 움직인다. 이이남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내 빛이 올무가 되어 오히려 인간을 속박하고 있다"며 "서양의 조각에 동양의 한자를 병치시면서 결국 초자연적인 빛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기위해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 펠리페 4세의 딸이자 카를로스 2세의 누이 마르가리타 공주가 조각상으로 등장했다. 조각뒤, 액자속에 들어간 마르가리타 공주가 손에 든 촛불은 폭죽같은 불꽃을 피워내 눈길을 끈다. 
 

[사진=박현주기자]
 

 전시장 2층에는 미디어작가 이이남의 흔적이 더욱 옅어진다.

 직사각형의 TV화면이 서서히 물속에 잠긴다. 화면에는 두 눈을 부릅뜬 표범같이 흑인이 있다. 물속에 담겨지면 쏘아보던 눈도 감긴다. 물속에 잠겼다가 빠졌다를 반복하는 '리본 라이트'(Reborn Light)는 세례를 받으며 태어나는 부활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 작품이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번 전시의 주제"라며 "부활을 해야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종교적 의미를 벗어나 재탄생의 의미를 선보이려 했다"고 말했다.

 압권은 이탈리아 로마 성베드로 성당에서 자태를 뽐내는 피에타(Pieta)상이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해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미켈란젤로의 대표적인 조각이다.

 하지만 이 작품, 그대로 재현이 아니다. 품에 있던 예수가 '공중부양'했다. "600년만에 어머니(마리아)품을 떠나는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작가는 "품안을 떠나는 것은 승천이 된다는 의미와 함께 디지털이 가진 무한함을 함께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높이가 더 컸으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여주려했지만 천장이 낮아 이번 전시에는 뜬 상태로만 고정되어 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공중에 떠 조명을 받은 예수는 두개의 그림자가 달라 놀라움을 선보인다.
하나는 예수의 그림자, 성인의 형상이라면 하나는 마치 탯줄이 달린 것 같은 아기의 모습처럼 보인다.

 작가는 "의도치 않은 우연의 결과"라며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져 죽은 아들을 안고 있던 성모 마리아와 어머니 품에 안겨만 있던 그리스도를 동시에 해방시키자 다시 아이로 태어나는 것 같은 '윤회설'까지 느껴지게한다.
 
 
[이이남 작가가 예수는 왜  TV를 짊어졌을까 작품앞에서 작품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박현주기자]

빛'을 주제로한 이번 전시는 독실한 기독교인인 작가의 신앙심이 깔려있다. 전시주제인 '다시 태어나는 빛'에 대해선 "생활하고 활동하는 곳이 빛의 도시, 광주이다 보니 아무래도 연관이 되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고난의 십자가 대신 TV를 이고가는 예수는 움직이는 그림속에서 숨은그림 찾기하듯 움직이고 있다. 미디어작가로서 디지털작가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는 의미로도 읽힌다.

지난 작품과 신작이 어우러진 전시장은 작가 이이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살펴볼수 있게 꾸몄다.

전시 개막 하루전에 만난 작가는 "정신이 없다"며 멍한 표정으로 작품설명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전시장 공간 규모만도 1000㎡(300평)에 달해 몇달간 신작 준비에만 몰두해왔다고 했다. 그가 대학시절부터 꿈꿔온 전시장이기 때문이다.

꿈을 이룬 작가가 말했다. "제가 88학번입니다. 조선대 재학중 서울에 올라와 인사동에 있는 가나아트를 보며 난 언제 저런 좋은 전시장에서 전시하나 했는데…,오래시간 준비했어요. 전시장 구석구석 어떻게 작품을 걸을지 이미 생각해놨었거든요."

조소과 출신으로 졸업후 10여년만에 미디어아트작가에서 조각가로까지 확장된 이번 전시에는 30여점의 설치 및 평면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인다. 가나아트부산과 서울스퀘어 미디어 캔버스에서도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는 내년 2월8일까지. (02)720-1020 박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