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포스트] '블프'에 대한 비판이 설득력 없는 이유
2014-12-05 23:18
아주경제 강규혁 기자 =10여 년 전 미국에서 생활할 때의 일입니다. 현지에서 처음 맞은 추수감사절을 기념해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뉴욕 맨하탄 거리를 밤새 헤맸습니다.
광란의 파티를 즐긴 후 돌아가려는 순간, 몇몇 유럽 친구들이 명품 브랜드 매장이 몰려 있는 5번가에서 밤을 샐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죠. 하지만 그들은 진지했습니다. 새벽 매장 오픈과 함께 50%가 넘는 세일을 하기 때문이라며,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에는 '쿨'하게 거절했습니다.
추수감사절 다음날, 즉 블랙프라이데이 아침 다시 맨하탄을 찾은 제 눈 앞에 여지껏 본 적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국내에도 진출해 있는 유럽 국적의 패스트패션은 당시 유명 디자이너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한정판인 해당 제품을 사기 위해 그야말로 매장 안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습니다. 최근 국내 굴지의 의류업체가 옷을 구입하면 32인지 LED TV를 사은품으로 증정하는 행사를 진행해 화제가 됐습니다. 이른바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를 표방한 것이죠.
다들 아시다시피 블랙 프라이데이는 미국의 추수감사절(11월 넷째 주 목요일)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최대 규모의 할인 행사를 뜻합니다. 블랙 프라이데이를 기점으로 크리스마스와 연말까지 미국 유통업체들의 본격적인 세일이 이어집니다.
배송대행으로 유명한 한 업체는 11월만 되면 언론대응에 여념이 없습니다. 최근에는 국내 언론은 물론 최근에는 일본, 중국 언론까지 취재를 요청한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자연히 관련업계의 덩치도 덩달아 커졌죠.
과거 일부 유학생이나 얼리어댑터(early adapter) 등을 중심으로 소위 마니아적인 제품들을 소규모로 들여오던 것이 활성화되면서 해외직구의 모태가 됐고, 그 규모가 1조원을 넘어 연내 2조원 돌파가 유력시 됩니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인데 눈 뜨고 국내 소비자들을 빼앗긴 국내 업체들은 울상입니다. 급기야 일부에서는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 업체들의 상술에 '부화뇌동' 하고 있다며, 각성을 촉구한다는 목소리까지 제기됐습니다.
심정적으로 이해는 됩니다만 결코 동의할 수는 없는 비판입니다. 소비자들의 반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난주 올해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소비자들의 소비행태를 분석한 한 업체는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해외직구를 통해 제품을 구입한 응답자 1000명 중 99%가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기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해외직구를 할 의향이 있다'고 자신있게 답한 거죠.
해외직구를 하는 소비자들이 업체들의 주장처럼 단순히 저렴한 가격에만 '천착(穿鑿)' 하는 것은 아니라는 방증입니다.
블랙프라이데이 보다 한달 여 앞선 10월 31일은 '할로윈 데이'입니다. 적지 않은 여론이 도에 지나친 할로윈 데이 상술과 마케팅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대중 역시 이를 큰 문제 없이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국내 도입과 대중화 과정이 더 느려면 느렸지 빠르지도 않았고, 국내 경제에 악영향(?)까지 미치는 블랙프라이데이에 대한 비판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굳이 제가 대답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사실 문제를 제기한 유통업체 관계자 분들도 이미 알고 계실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