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 위기] 엔저에 발목 잡힌 일본 경제

2014-11-18 13:03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아베노믹스가 붕괴했다. 아베 총리가 집권하면서 야심차게 내세운 아베노믹스의 중심축 '세개의 화살'(재정팽창·양적완화·구조개혁)은 2분기 연속으로 GDP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부러졌다. 아베 정권은 엔저를 유도해 수출기업의 수익을 늘리고, 그 수익이 가계로 흘러들어가는 '선순환'을 기대했으나 중소기업과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키는 결과만 초래했다. 즉 수출기업에게는 약이 됐으나, 내수기업과 가계에는 독이 된 것이다. 지난 4월 소비세 인상으로 인한 소비 위축이 이번 분기에 해소될 것이라는 정부의 예상이 모두 빗나가면서 아베노믹스는 최종심판을 받게 됐다. 

▶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전망은 엇갈려

일본 내각부는 17일 물가 변동 영향을 제외한 7∼9월 실질 GDP 잠정치가 전분기 대비 0.4%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연율 환산으로 1.6% 감소한 수치다.

일본 경제는 2개 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올 4월 소비세율 인상(5→8%)과 엔저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이 개인 소비를 위축시키는 경기 둔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초 일본 정부와 시장은 7∼9월 GDP가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으나 ‘개인 소비의 둔화’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해 예상치를 밑도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 엔저로 인해 기업 수익과 고용 상황이 개선돼 소득이 증가하고 있으나 소비세율 인상과 엔저에 기인한 물가상승을 소득상승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디플레이션에 익숙했던 일본 국민들에게 물가상승은 소비심리를 대폭적으로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일본경제의 약점’이 그대로 노출됐다고 분석했다.

일본 국내에서의 향후 경기 전망은 양분되고 있다.

미쓰비시UFJ 모건 스탠리는 백색가전의 국내 출하가 5개월 만에 전년도 실적을 웃돌았다고 지적하면서 8월 이후 경기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고 진단했으며, 미즈호 종합연구소는 연말 보너스의 증가로 소비가 자극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한편 도요타 자동차는 3분기 국내 자동차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4.5% 감소했다는 점을 들어 경기 전망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 엔저정책에 발목 잡히다

일본의 적극적인 엔저정책은 중소기업에 장점보다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정밀기계와 자동차 관련 부품 산업이 집중돼 있는 나가노현에서는 제조 비용이 상승하면서 기업의 수익이 압박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 엔저정책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고 있는 도쿄증시 상장기업들은 2014년 경상이익이 평균 3% 이상 증가해 사상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국제경쟁력이 높은 일본의 자동차와 전자기기 업체는 엔저가 정착되면 앞으로 수익은 더욱 확대된다고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엔저로 인한 내수산업의 어려움을 수출로 극복해 보충하고 있는 구도가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으나, 예상을 웃도는 일본의 마이너스 성장은 기업의 수익이 가계소득으로 연결되면서 소비가 확대된다는 ‘아베노믹스의 선순환’이 충분히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노출시켰다.


▶ 소비세 인상 연기, 국회 해산

아베 신조 총리는 18일 당초 계획된 소비세율 인상(8→10%)을 2017년으로 연기할 것으로 보인다.

연기 이유는 2개 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경기 침체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으로, 이러한 정책 변경에 대한 평가를 국민에게 묻기 위해 중의원을 해산해 총선을 치를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17일 호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후 귀국해 아소 다로 재무상과 협의를 갖고 소비세 인상을 1년 반 연기하고 중의원 해산 방침을 전달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의 소비세율 인상은 예정대로 추진돼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IMF는 일본은 심각한 공공 채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소비세 인상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또 IMF는 일본의 매우 높은 국가 채무 수준을 고려할 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일본의 재정상황 악화를 우려했다.


▶ 일본정부, 소비촉진 위해 20~30조원 투입

이번 GDP 발표가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시장에서는 향후 정부가 내놓을 대책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총리가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기부양책은 개인 소비 촉진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면서 20조~30조원 규모의 재정투입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아마리 아키라 경제재생 담당상은 17일 기자회견에서 “경기부양책 규모는 클수록 효과가 있지만 재정이 악화될 위험성이 따른다”고 언급했다.

재정지출은 아베노믹스의 핵심요소지만 일본은 매년 긴급경제대책을 위해 돈을 풀어왔으며, 지난 2012년에는 공공사업을 위해 100조원의 재정지출을 결정한 바 있다. 또 2013년에도 55조원을 투입해 이제는 재정적인 여력도 많지 않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일본정부의 소비세 증세 연기 결정으로 내년도 재정 적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당초 계획의 달성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