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기고> 담배에 관한 단상

2014-11-05 16:33

[사진=국민건강보험공단 부산지역본부 울산동부지사 이영준 차장.]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4월, 담배회사를 상대로 흡연피해구제소송을 제기하였다. 담배가 국민의 건강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치료비로 지출되고 있는 것에 대한 유해물질 제조자로서의 책임을 담배회사에게 묻겠다는 취지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담배는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일상생활에 깊게 뿌리내린 친근한 물건이었다. 어느 장소에서나 흡연은 가능했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보무도 당당하게 재떨이가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누구랄 것 없이 담배를 꼬나물고 업무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다방에 들어서면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술집도 그랬고, 당구장도 그랬고, 골목 모퉁이마다 담배꽁초가 잔설처럼 쌓여있었다. 어린 아이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놀고 있는 자신의 집에서도 담배피우기는 자연스러웠다. 담배는 그야말로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모르는 게 약이었던 시절이었다고 할까.

11년 전, 나는 담배를 끊었다. 그때는 이미 실내 흡연이 금지된 때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 눈치 보며 복도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종이컵에 재를 떨어가며 억척스럽게 담배를 피웠다. 그런 내 모습이 점점 구차해지고 스스로도 싫었다. 그래서 담배를 끊었다.

물론 담배를 한 번에 단박 끊었던 건 아니다. 금연결심 3번만의 성공이었다. 처음에는 아내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직장동료에게도 공표를 하고 금연을 시도했는데 며칠 못가 실패했다. 술자리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딱 한 개비만 피우자’며 눈총을 주는 동료의 담배를 얻어 피웠다. 그 한 개비의 담배가 그 다음 술자리에서는 두 개비가 되고 세 개비가 되고, 어느 날엔가는 담배를 사서 숨겨두고 몰래 피웠다. 하루에 다섯 개비 이상 안피웠다는 사실에 스스로 안도하면서... 참으로 졸렬한 금연 실패였다.

두 번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금연을 결심했다. 어느 순간 모두가 깜짝 놀라는 순간을 상상하며, 금연을 즐기기로 했던 것이다. 보름 정도는 금단증상을 잘 이겨가며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을 한 날 저녁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참으로 달콤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꿈속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자신을 매우 걱정스러워 하며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마음이 일었다는 사실이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기 위해 옷을 챙겨 입을 때 나는 보았다. 두어 개비 정도 남아있는 쭈그러진 담뱃갑을... 꿈은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 번째 금연결심은 또 술 앞에서 무너졌다.

세 번째는 우연찮게 금연 기회가 찾아왔다. 술 마신 다음날, 몹시 속이 쓰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혹사당한 몸에게 휴식을 주자’ 그래서 딱 하루만 담배를 멀리하자고 마음먹고 하루를 버텼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하루를 버티는 것은 쉬웠다. 다음날은 ‘하루를 버텼는데 오늘 하루도 버텨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그렇게 버텨온 시간들이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십 년이 되었다.

나는 담배를 끊은 것이 아니다. 내 몸에게 휴식을 주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아쉽지도 않다. 내 몸은 이제 스스로 담배를 거부할 줄 안다.

내가 금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 물이다. 나는 흡연욕구를 느낄 때마다 물을 마셨다. 물통을 몸에 달고 살았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겠다. 그만큼 물을 많이 마셨고 한 달 정도는 술자리를 피했다. 이후 술자리에서도 흡연욕구가 강하게 일어나면 술 대신 물을 마셨다.

내 삶에서 담배가 사라졌다. 이를 가장 기뻐한 사람은 아내였다. 아이들도 덩달아 좋아했다. 담배연기를 멀리하고 난 다음 타인으로 부터 맡게 되는 담배연기의 고통을 알고 나서야 나는 내 가족이 얼마나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나와 술자리를 같이한 큰 아들의 고백은 그래서 더욱 가슴 아렸다.“제가 초등학교를 다니기 전인 어린 나이에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들어오시면 언제나 저의 볼에 입맞춤을 해 주셨죠. 저는 술 냄새와 그 보다 더한 담배냄새 때문에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항상 그랬지만 아버지가 실망할까봐 말도 못하고 견디고 있었죠.”

담배를 버리니 미각이 살아났다. 식욕도 증가했다. 몸무게가 늘어나다가 어느 시기가 지나자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하나를 버리고 열을 얻은 기분이었다.

담배를 끊은 기념으로 나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하루 한 갑 담배를 사는 비용을 매일 자동이체가 되도록 했다. 그렇게 모아진 돈으로 아내가 원하던 김치냉장고도 사주고 꼭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사용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은 지출하는 대신 목돈을 만들기 위해 지출을 금하고 있다. 언젠가는 또 나에게, 내 가정에 큰 선물이 되어 돌아올 그날을 위해...

이제 담배는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20년을 함께해 온 담배는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 금연 이후에도 수시로 꿈속에서 나를 괴롭혔다. 지금은 거리에서 남이 피우는 담배연기만 맡아도 코를 가린다. 내 호흡이 편치 않은 것이다.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대상이 못된다. 담배 속에 포함되어 있는 유해물질이 얼마나 많은 질병을 유발시키고 있는지는 이미 상식이 되었으니 말이다. 담배는 기호식품으로 본인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흡연론자들의 주장이나, 흡연은 선택이 아닌 중독에 의한 행위라고 하는 주장이나 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유독한 걸 알면서도 담배를 계속 피우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맞지 않는 논리라고 생각한다.

거꾸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시대착오적 발상으로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구현은 요원하다. 건강뿐만 아니라 자신의 품위를 지킬 수 있고 가족의 건강과 환경, 그리고 불필요한 비용지출을 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내 결정권을 구사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니겠는가.

건보공단이 거대한 자본 담배회사를 상대로 지난한 논리싸움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용기에 대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박수를 보낸다. 이번 기회에 담배회사도 어떠한 결정이 미래지향적이고 올바른 결정인지를 심사숙고해서 국민의 건강을 위해 일정부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용단을 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건보공단과 담배회사 모두 현명한 처신을 바란다.